삼겹살 행정과 정부미 행정
삼겹살 행정과 정부미 행정
  • 김동진 <전 언론인>
  • 승인 2012.02.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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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동진 <전 언론인>

이제 청주에도 대표음식이 하나 생겨날 모양이다. 이름하여 청주 삼겹살. 하고 많은 음식 중에 하필이면 왜 전국적으로 흔하디흔한 삼겹살이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청주삼겹살의 내력을 잘 아는 나로서는 지당한 선택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될 만한 청주삼겹살의 역사가 있고, 황폐화 되는 도심을 살릴 수 있고, 지역경제 살리기에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청주를 알리는 홍보의 첨단이 될 수 있으니 도랑치고 가재만 잡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삼겹살은 소통의 코드를 갖고 있다. 혼자 삼겹살을 구워먹는 사람을 어쩌다보면 왠지 측은해 보인다. 그 자리에 친구가 있어도 좋고, 가족이 있어도 좋고, 연인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잔 기울이며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속에 숨겨둔 얘기며, 가슴에 담아둔 얘기, 좋은 얘기 나쁜 얘기, 여자 얘기, 정치 얘기 등 따로 가리지 않고 털털 털어버린다. 후덕한 청주 아줌마가 푸짐하게 담아 주는 상추며 깻잎, 파절이, 마늘, 묵은 김치와 함께 먹다보면 마음까지 배불러온다.

그런데 청주시가 요즘 삼겹살을 청주의 대표음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게 어쩌면 콧구멍을 판 뒤 뭐라도 끌려 나왔는지 확인하는 내 소아병 같은 습성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속 좁은 나를 스스로 탓하기도 한다. 아니면, 주민들의 순수한 참여와 관심이 가볍게 묵살되어버리는 청주시 지방자치행정의 현주소에 대한 실망감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삼겹살 자리만큼 소통하는 행정이라면 참 좋겠다 싶은 것이다.

2년 전 한범덕 청주시장을 찾아간 것이 전주 비빔밥 축제가 열릴 때쯤이었다. 신문사 , 방송사 , 기획사 대표는 물론 시청 공무원, 전 시의원, 문화의 집 관계자 등으로 민간차원의 가칭 '청주삼겹살 추진위원회' 발기인 모임을 꾸리고 세 차례 모임을 가졌으나 행정기관의 협조 없이는 삼겹살거리 조성이 어렵다는 내부 논의 끝에 시장을 찾아간 것이었다.

가을이 되면 전국의 많은 자치단체들이 저마다 내로라하는 축제를 열며 존재감을 뽐내는데 유독 우리 청주만 허전해보였다. 물론 청주에도 직지축제나 공예비엔날레 같은 전국 규모의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축제의 속성 상 어딘가 2%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우리 청주의 축제에는 대표 먹을거리가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삼겹살이 청주의 대표 음식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60~70년대 전국 3대 우시장으로 손꼽히던 청주, 목돈을 만지던 소전 상인들 사이에서 삼겹살이 인기 있었던 이유, 당시 인기 있었던 삼겹살 집들 이름, 시오야끼와 데리야끼의 차이, 삼겹살과 더불어 인기 메뉴였던 해장국 등. 요즘 보도기사 내용과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열 사나흘이 지나도 아무런 답변은 없었고, 답답한 마음에 '열린 시장실'이라는 시장 홈피에 공개로 글을 남겼더니 비공개로 답변이 붙었다. 그게 전부였다.

지난 해 청주시가 삼겹살 거리를 조성한다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발표했을 때, 추진위원회는 사실상 와해되어 있었다. 우리 고향에도 내로라하는 먹을거리 하나 만들어 놓자는 순수한 취지는 삼겹살 구이판 의 타다 남은 비계 덩어리처럼 말라 비틀어져 버렸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 자치단체장이 공적을 탐하지 않는 것은 바늘귀에 동아줄을 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명예욕과 탐리가 같은 이유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는 그 이기심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선출직 공직자들은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이뤄지는 모든 업적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갖는다.

그러는 동안 무수한 별처럼 빛나는 아이디어는 스러지고, 소통의 행정은 말잔치에 그치고 만다. 앞으로 '청주 삼겹살'은 대대손손 영원하겠지만, 불통행정은 머지않아 끝나기를 두 손 모아 기대한다.

덕분(?)에 우리 삼겹살 위원들은 안타깝게도 훗날 한자리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젊은 날을 추억할 좋은 안주거리를 하나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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