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변신이 또한 무죄라지만
남자의 변신이 또한 무죄라지만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2.02.2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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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직장에서 샤워를 하고서 퇴근하는 것이 나의 일상적인 관례이다. 집에서 목욕탕에 가는 일은 이발을 하거나 묵은 때를 밀거나, 피곤해진 몸을 뜨거운 물에 풀어내기 위해서다.

몸이 축 처지고 무거워 집앞 목욕탕에 갔다. 제법이나 뜨거운 욕탕에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 한동안이나 식은땀을 흘리고서 욕탕을 나섰더니 슬그머니 내려앉는 눈까풀이 제법이나 무거웠다. 휴게실에 누우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한동안 깊은 잠속에 빠져들었다가 일어났더니 개운하고 몸도 제법 가벼워진 것 같았다. 게슴츠레한 눈망울을 손등으로 훔치며 옷장에서 지갑을 잡아들다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옷장에서 시커먼 머리카락이 불쑥 튀어나와 바닥에 툭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겁하고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옷장 밖으로 내던졌다. 신음소리를 듣고서 달려온 사람들이 머쓱하게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머리카락을 잡아들고 쫓아오는 사내가 남의 가발을 왜 내던지느냐고 다그쳤다.

그제야 머리카락이 가발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쌍스렇게 쏘아보며 달려드는 사내는 제법이나 비싼 가발이 망가지면 어떡하려고 내던졌느냐고 다그치는 타박이 멈추지 않았다.

옷장에서 가발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었다.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귀신의 머리카락이 스쳐가면서 화들짝 놀라는 몸뚱이가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툭하고 떨어지는 가발에 기겁하고 놀라 목이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나도 모르게 가발을 내던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가발 주인은 머쓱해하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가발을 옷장에 내던지고 화장실에 다녀왔다는 사내는 나하고 나이는 엇비슷해 보였지만 형광등처럼 빛나는 대머리였던 것이다.

한참을 가발 때문에 소동을 벌였던 나는 사내와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서 주섬주섬 옷을 걸쳤다. 옷장 너머 거울을 마주보고 가발을 만지작거리는 사내가 싱긋이 웃는 눈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 또한 눈인사를 건네며 목욕탕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하찮은 가발에 놀라서 주저앉다니…. 벌거벗은 채로 주저앉아 쩔쩔매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나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나또한 허여멀겋게 보이는 반질반질하게 보이는 대머리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서면서 허여멀겋게 벗겨진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가발을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해본다.

가발을 이용한다면 한참이나 젊어 보이겠지만 가발 값이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신경이 쓰인다. 여자들 화장품 값에 비하면 비싼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면 남자의 변신 또한 무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그까짓 가발 값은 아무것도 아닌 듯 싶다. 가발을 이용한다고 해서 정말로 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머리로 보여야 할 머리가 왠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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