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 외면하는 은행들…
저축은행 사태 외면하는 은행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02.19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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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사연도 가지가지. 들어보면 다 안타깝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 얘기다.

부산지역에서 파출부 생활로 살림을 꾸려왔다는 A씨(65). 그는 장애인 남편과 단둘이 살면서 억척스럽게 일을 해 모은 6000여만원을 뜻도 잘 모르는 '후순위 채권'에 투자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B씨(50)는 장애인인 아들의 결혼자금이 포함된 1억3000만원을 저축은행에 맡겨놓았다가 '보호 한도액' 5000만원을 초과한 8000만원을 떼일 상황에 처했다. 은행 이자로 생활해 온 팔순을 넘긴 한 할머니는 8.5%의 고이율을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남편 퇴직금 등 1억여원을 후순위 채권에 투자했다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들을 위해 나섰다. 이른바 저축은행 특별법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 특별조치법안'을 이달초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을 뛰어넘은 특례법인데 취지는 지금까지 5000만원까지의 예금만 보호해주게 되어 있는 법을 개정해 5000만원 초과 예금자 피해액의 절반 이상(55%)을 정부 기금으로 돌려주자는 것이다.

가령 저축은행에 1억원의 예금을 한 사람이라면 예금자 보호법에 보장돼 있는 5000만원 외에 5000만원의 55%인 275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다 떼일뻔한 돈의 절반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 피해자들로서는 보통 반가운게 아니다.

이걸 두고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국회 내에서조차 법치국가의 근간을 훼손하는 얼토당토 않은 '망국법', 총선·대선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의 극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에서도 거부권이 운운되는 등 회의적인 시각이다.

이상한 건 떼일 돈의 무려 55%를 되돌려받게 돼 좋아할 줄만 알았던 저축은행 피해자들이다. 좋아하기는커녕 피해액 전액 보장을 요구하며 되레 '반격'이다.

내세우는 논리는 특별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과 다르지 않다. 저축은행의 부실징후를 알고도 사전에 조치하지 않은 점, 그 부실 감독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 만큼 정부가 100% 원금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와중에 소리없이 표정관리에 애쓰는 곳이 있다. 은행들이다. 지난해 무려 16조원대의 순이익을 낸 은행들의 성과급 잔치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민은행은 이미 기본급의 15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50만원까지의 피복비를 더 줬다고 한다. 하나은행도 100%를 지급했으며 우리은행을 비롯한 대부분 은행들이 비슷한 수준 이상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은행이 거둬들인 엄청난 이익이 높은 예대마진과 터무니없는 수수료 수입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그러면서도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IMF구제금융 사태 때 국민 세금 160조원을 수혈해 간신히 살아났던 은행들 아니던가. 그나마 아직도 은행권은 당시 지원받았던 돈의 40%, 60조원 이상을 갚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 성과급 잔치라니.

저축은행 사태의 원죄는 금융권에 있다. 감독관리를 소홀히 한 정부도 문제지만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에서 모든 게 비롯됐다. 16조원 순익으로 성과급 잔칫상을 차린 은행들. 저축은행이 1금융권이 아니라고, 저축은행 사태를 나몰라라 하는 걸까. 국민 혈세 손대지 않고, 자체 기금이라도 만들어 피해자들을 구제하려는 범 금융권의 노력을 바랐다면 너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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