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2.02.1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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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출근길에 함박눈이 펑펑 내립니다. 울컥 감정이 복받칩니다. 아버님 모습이 내리는 눈 사이로 신기루처럼 보입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슬픔은 목을 넘지 못하고 눈물과 콧물로 흘러내립니다. 집 사람이나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울지 못했던 죄스러운 마음이 통곡을 부릅니다.

아버지로 산다는 것 그것은 아버지의 시대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12남매의 종갓집 장손으로서의 짐은 무거웠을 것입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집안어른들의 걱정과 염려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야 했고 많은 동생들 틈바구니에서 형 노릇 장손 노릇은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늘 근엄하시고 어려웠으며 곁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나 또한 집안의 가풍을 이어야 하는 장남으로 태어났으므로 아버지의 기대치는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아버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방황과 반항의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사회에서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사랑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삶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말씀이 없으시며 자신의 표현을 잘하시지 않은 분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을 알지 못했기에 나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유리창이 뿌옇게 서리가 얼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금이 갔는지 슬픔이 있는지 들여다볼 수 없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입김으로도 아버지의 마음을 녹이고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자식들이 장성하여 어른이 되도록 나는 아버지의 자식으로만 살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하신 것처럼 아이들에게 근엄 하려고 노력했으며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밖에서 해결한다는 핑계로 술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크게 웃지 않았고 겁나는 일이 있으면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가족을 사랑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이 깊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입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아버지 나름대로의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이제 종갓집 장손이고 어머님이 계시며 동생들이 넷이라는 현실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를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답습한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지우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 방법을 지우고 나는 새로운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 할 줄도 사랑을 받을 줄도 아는 사람,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을 줄 아는 사람,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 마음이 따뜻하여 언제나 마음의 창이 맑은 사람,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상사 시에 정초인데도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주시고 애도의 정으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경황이 없어 제때 예를 차리지 못하였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버님 장례 모시는 날처럼 하얀 눈이 내립니다. 아버님도 나도 온 세상 모두가 순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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