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
  • 김성수 <청주새순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2.02.1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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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성수 <청주새순교회 담임목사>

이번 겨울은 어느 해보다 매서웠던 것 같다. 문명의 이기로 난방이 좋아졌고,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대이기에 옛날처럼 몸으로 큰 추위를 느끼는 것도 아닌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움직이고 몸을 외투로 감싸며, 집집마다 외풍이 센 곳에 있는 수도가 얼어 터져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모양이다.

겨울의 끝자락, 아직 먼 산에 하얀 눈이 덮여 있고, 나뭇가지들은 검은 색을 띄고 있지만 다가오는 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집 앞에 쌓인 눈이 한낮에 햇살로 금방 녹아버리고, 차 앞 유리 위에 붙어있는 눈도 와이퍼로 문지르면 힘없이 닦여 내려간다. 봄이 문 앞에까지 와서 노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추위 속에서도 봄의 소리를 들었다. 동풍이 불어와 언 땅을 녹이는 소리, 겨울잠에 빠졌던 벌레가 깨어나 움직이는 소리,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밑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 노는 소리, 이것이 입춘(立春)의 소리란다.

절기로는 입춘이 양력 2월 4~5일이기 때문에 겨울의 한 복판인 셈이다. 그런데 아직 봄이 느껴지지도 않고, 한 참후에나 시작되는 농사철을 앞두고 왜 미리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보았을까? 그만큼 선조들은 자연이 들려주는 음성을 귀히 여겼고, 그것이 던져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였던 우리 선조들은 입춘을 기준으로 농사일을 계획하고 준비하여 88일 되는 날, 밭에 씨를 뿌렸다. 거기에 맞춰 아들 딸 시집장가도 보내고, 크고 작은 일들을 배열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입춘은 새해의 출발점인 셈이다.

이제 언 땅이 녹기를 기다려 농부들은 땅을 갈아엎고, 건축가들은 터파기를 하고, 어부들은 봄 바다로 나가기 위해 바다를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먼저 땅이 녹기 전에, 바다의 얼음이 녹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쟁기를 준비하고, 배를 손질하고 어구들을 손봐야 하는 것이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으나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지혜롭고, 얼마나 부지런한 일인가 그러므로 봄이 오는 소리는 희망을 만드는 소리요, 건설을 준비하는 소리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움직이는 소리이다.

성서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시편126편 5, 6절)는 말씀이 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있을 때, 불렀던 노래의 구절이다. 70년 긴 세월, 고향을 떠나 남의 나라에서 노예의 삶을 살면서 서글픈 눈물을 얼마나 흘렸겠는가 그리고 해방의 기쁨을 맞아한 후에도 그들은 이 노래를 불렀다. 또 후손들에게 가르쳤다. 기쁨을 거두려면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한다. 곡식 단을 품에 안으려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한다.

머지않아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나뭇가지에는 물이 오르고, 새움이 터 올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들판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개구리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봄을 노래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깨어나기도 전에, 그들보다 먼저 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자. 풍성한 가을을 만들기 위해 봄이 오는 소리를 듣자. 그리고 준비하자. 계획하자. 눈물을 흘리자. 씨를 뿌릴 채비를 하자. 돛을 올리고 희망의 봄 바다로 나갈 어구를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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