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빛
겨울의 빛
  • 충청타임즈
  • 승인 2012.02.0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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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강연호

우듬지에 겨울 햇살이 이명(耳鳴)처럼 매달려 있다
초록이 없으므로 햇살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나무는 제 발치께를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발로 쓸어모으는 기억은 누구에게나 허전한 법이다
한때 웅숭깊었던 그늘의 넓이를 가늠하며
나무는 체온계를 문 아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텅 빈 고요가 압박붕대에 묶인 허리춤을 더듬는다
동그랗게 말린 이파리 몇 장이 마저 떨어져
이미 탕진한 삶을 둔탁하게 덧칠한다
저 잎들이 움켜쥔 허공조차 내 몫이 아니었구나
바람도 없는데 나무는 진저리친다
나뭇잎 대신 이명의 햇살이 떨어져 내린다
그늘이 있던 자리를 비춘다 배추 속같이 환하다
나무를 지탱하는 힘은 이제 고요가 아니다

※나무도 겨울이면 쓸쓸함이 커지나 보다. 발밑의 그늘마저 사라진 채 밑동엔 지난 흔적만 우물처럼 깊어진다. 꽃잎을 눈꽃처럼 날려보내고 초록잎마저 대지로 돌려보내고야 나무는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모습으로 겨울햇살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겨울빛에 접속하는 겨울나무의 깊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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