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스스로 사육당하는 시대
인간 스스로 사육당하는 시대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2.02.0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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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명품 핸드백과 명품 옷으로 치장한 여자가 작고 초라한 집 앞에서 울고 있다.

집 안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해 맑은 웃음과 함께 대문 밖으로 아이가 나오고, 아이를 부르며 엄마 아빠가 나오고, 언니 오빠가 나오고. 잠시 후 할머니가 나온다. 가족 모두가 울고 섰는 여인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자, 여자는 돌아서서 차를 타고 멀어진다.

그녀는 가족이 없다. 아니 가정이 없다. 외양은 치렁치렁하게 걸치고 화려해 보이지만, 마음의 안식과 애정을 공유하는 보금자리가 없는 것이다.

돈 많은 그녀는 비참하고 불행하다. 이 상황은 픽션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고 빼앗을 수 있고, 행복도 산다고 믿게끔 교육적으로 쇠뇌당한 21세기 신민으로선, 말도 안 되는, 그래서 윗글은 픽션이다.

지금 우리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청춘을 다른 말로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결혼과 연애,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아이 낳고 기르기 힘든 세상이니, 결혼과 연애도 포기하는 세상이고, 따라서 가정도 포기하는 세상이다.

이유는 '취업이 늦어서'가 33.1%, '연봉이 너무 적어서'가 32.1%, '빚이 많아서' 16.8% 순으로, 결국은 돈 문제다.

어쩌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전국 맞벌이 가구 수는 507만 가구로, 외벌이 가구 491만 가구보다 많으니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살림을 하는 구조는 깨진 것, 따라서 가정도 어그러져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이자,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사회 속에 놓여 있으니 정부로서도 대책이 시급하여 육아보육비도 지원해 주고, 노인 부양비도 지원해 준다고 이런 저런 선심성, 긴급정책을 내세우는데, 이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보육원에 맡겨야 하고 어른은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더 살기 편하다는 정책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정책은 정책일 뿐 해결책은 아니다. 돈이 곧 성공이고 돈이면 다 될 수 있다고 교육받은 세대가 추구하는 행복은 아무리 퍼붓는 복지정책에도 포만감을 느낄 순 없어서, 문밖에 가정을 포기하는 미래사회를 세워놓는 일이요. 결국엔 상실의 시대로 가는 것일 뿐이다.

가정이란 사회를 유지·존속시키는 최소의 단위이며 개인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중간 고리로서, 가정이란 혈연으로 희노애락을 공유하며 세상으로 나아갈 출발 처인 자궁과 같은 곳인데, 가정이 아니고 보육원에서 육아되는 아이들, 가정이 아닌 요양원에서 보호받는 노인들, 국민의 절반이 사육되는 나라,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사육해야만 하는' 끔찍함.

그러나 끔찍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늦었지만 돌아가야 한다.

행복에는 개인의 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출발은 혈연의 씨족이므로, 가족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행복추구에 맞는 것임을 뿌리부터 다시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다 사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다는 것을 정말로 심각하게 다시 교육해야 한다.

나라 없는 설움에, 전쟁까지, 배고파 못살겠어서 '잘 살아보세'라고만 가르쳤던 어버이들의 공을 인정하고 용서하자. 이 사육의 시대를 방치하면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올'(all)포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가정 없는 사회, 인간이 사육당하는 시대, 이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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