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산양복원과 헛개나무 군락
월악산 산양복원과 헛개나무 군락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2.06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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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야생동물의 똥을 생태계의 황금으로 인식하게 만든 사례가 있다. 월악산 산양 복원과정에서 밝혀진 산양 똥의 비밀이 그 것이다.

월악산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산양이 살았다. 그러나 이후 산양이 발견되지 않아 월악산은 그저 산양의 옛 서식지로만 알려져 왔다.

산양이 사라지자 월악산 생태계에는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 많던 헛개나무 군락지가 시나브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헛개나무가 유명세를 타면서 나무와 열매가 무분별하게 채취된 까닭도 있었지만, 단속이 강화된 뒤로도 계속해서 헛개나무가 줄어들었다. 그 이유를 사람들은 전혀 몰랐다.

그러던 중 1994년 새로운 계기가 찾아왔다. 사라진 터줏대감 산양이 돌아오게 된 것. 1978년 폭설때 설악산서 구조된 1쌍의 산양을 애버랜드 측에서 사육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태어난 1쌍을 산림청이 기증 받아 월악산 국립공원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일이다. 이어 산림청과 애버랜드 측은 97년과 98년에도 각각 1쌍씩을 추가 방사했으며 이후 자연 증식이 이뤄져 2003년 무렵엔 최대 15마리까지 불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그로부터 2~3년 뒤 환경부의 멸종위기종 증식 및 복원 계획이 수립되면서 그 계획에 월악산 산양 복원사업이 포함됐고 그에 따라 2006년 7월엔 월악산 송계계곡내에 국립공원 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이 들어서게 됐다. 중요한 건 그 무렵에 처음으로 "산양과 헛개나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는 점이다.

내용은 이렇다. 월악산에 산양복원팀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월악산 국립공원사무소에서 방사된 산양을 관리해 왔는데, 당시 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에게 특이한 점이 목격됐다. 겨울철 산양 똥에 유독 헛개나무 씨앗이 많이 들어 있고 봄철엔 그 똥에서 헛개나무 새싹이 엄청나게 싹 트더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흥미있게 들은 이용욱 산양복원팀장은 2010년 실험에 들어갔다. 산양이 헛개나무 씨앗 발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야생상태의 씨앗은 평균 발아율이 0.8%였던 반면 산양 똥 속에 있던 씨앗은 32.5%의 발아율을 보여 무려 4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에 대해 이용욱 팀장은 "산양이 헛개나무 열매를 먹고 되새김질하는 동안 씨앗 껍질이 산양의 위산과 소화액에 의해 깎여져 씨앗 발아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로 보아 월악산의 경우 산양이 헛개나무 씨앗의 발아와 산포(散布)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산양 똥의 역할이다. 이 실험에서 산양 똥 속에 있던 씨앗을 한 쪽은 똥 속에 든 채로, 또 한 쪽은 똥에서 씨앗만 추출해 파종했더니 의외로 똥 속에 든 채로 파종한 씨앗의 발아율(48.3%)이 똥에서 씨앗만 추출해 파종한 것(16.6%) 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당시 실험에서는 이 부분이 간과됐지만, 분명 산양 똥 자체가 발아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31.7%포인트라는 차이가 나겠는가. 추측하건대 산양 똥에는 식물 씨앗의 발아를 돕는 어떤 특별한 성분이 들어있든지, 아니면 위액 성분이 똥 속에 여전히 남아 있어 씨앗 발아과정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월악산에는 현재 29마리의 산양이 살고 있다. 이들은 동물들이 먹이 식물을 스스로 번성시켜 자신도 이익을 얻는다는 이른바 식물-산포자간 공진화 이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생태계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 과정에 똥이 있다.

못 다한 야생동물의 똥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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