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을 기다리며
새봄을 기다리며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2.02.0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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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입춘이 지났다.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바쁜 생활에서 한 번씩 바라보는 우리 집 아주 작은 뜰에 흰 눈이 쌓였다. 아직 이르지만 봄눈이라고 부르고 싶다.

수선화 싹이 흰 눈 속에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아무리 추워도 때가되면 봄은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 온다.

그 추운 날들을 땅속에서 견디고 싹을 틔우는 난쟁이 수선화가 봄이 오는 것을 가장 먼저 내게 알려주는 꽃이다. 새봄에 그 작고 노란 꽃을 피우기 위해 꽃이 진 후 여름부터 겨울까지 긴 잠을 자며 꽃피기를 기다린다.

그 긴 기다림은 은은한 향기와 노란 봄을 가득 담아 말없이 전해주며 봄바람이 불면 작은 몸짓에 샛노란 웃음으로 정겨움을 더해준다.

봄은 생명이 있어 잠자던 것들이 깨어나는 계절이다. 입춘이 지나면 바람도 다르다. 차가운 듯 하지만 사람의 품안으로 파고든다. 양지바른 언덕엔 어린 쑥들이 자라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오늘은 그런 봄언덕을 그리며 비발디의 사계 중에 '봄'을 듣고 싶다.

도톰해진 매화봉오리에 봄이 서려있다. 그 작은 봉오리는 봄 향기와 함께 내게 기다림을 갖게 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 표현할 수 없는 희망으로 가득하다. 매화가 필 때 풍기는 향기와 가지에 달린 작은 꽃이 전해주는 봄소식에 눈길이 머문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함께 살아가라고 자연을 선물로 주셨다.

지난주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풍란을 분갈이했다. 분갈이는 한 해 동안 새로 자란 뿌리는 남기고, 묵은 뿌리와 썩은 뿌리를 잘라준다. 또한 부서진 수태를 새것으로 갈아주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자연은 정직하게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공을 들인 만큼 보답 해준다. 풍란은 봄이 오면 새로 갈아준 수태에 신아(新芽)를 올리며 살아있음을 알린다. 분갈이를 마치니 힘은 들었지만 밀린 숙제를 다 한 것처럼 개운했다.

분갈이를 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 것은 뿌리 중간부터 썩어 과감히 잘라주고 삐뚤어진 뿌리는 바로잡아 준다. 상한 부분은 잘라주어야만 다시 새힘을 얻어 더 튼튼히 자라게 된다.

우리들 삶도 이와 같이 더러는 잘라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을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이달이 지나면 새봄은 내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어두운 땅속에서 돋아나는 수선화, 겨우내 찬바람을 견디며 피어나는 매화, 맑고 고운 신아를 싹틔우는 풍란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떨어지는 해가 곱게 벽돌담장을 비추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동쪽하늘에 밝은 해는 떠오른다. 이제 겨우내 묵은 때를 모두 씻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어지는 새날들을 위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설렘 속에 찾아올 희망찬 새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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