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핸드폰
엄마의 핸드폰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2.01.3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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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요즘에는 누구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것이 핸드폰이다.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생들도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

거기에 단순히 전화 통화나 하는 핸드폰이 아니다. 컴퓨터나 다름없이 발전하는 핸드폰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오락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자연스레 핸드폰 중독자가 되어가는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거기에 나또한 잠시라도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중독자나 다름없다. 혹시라도 그 동안에 전화가 온다면 어쩌나 하고 걱정스런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오늘도 분신이나 다름없는 핸드폰을 잡아들고 출근했다.

동료들과 휴게실에서 요란스럽게 울리는 핸드폰을 받았다. 지인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멈추면서 내려다보는 핸드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제법이나 많았다.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입력된 전화번호부를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불필요한 전화번호를 정리하겠다고 훑어보다가 기겁하고 놀랐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엄마의 전화번호가 반기듯이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핸드폰을 드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노환으로 시각이 흐려지고 청각이 멀어지는 엄마가 핸드폰을 이용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아서다.

어쩌다 안부 인사를 드리는 전화에도 고함치듯이 소리쳐야 알아들으셨다. 더군다나 지난 봄에는 갑자기 더해지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더니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듯이 주고받는 통화가 한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엄마와 통화를 멈추고서야 막내며느리가 해주는 핸드폰이라는 것을 알았다. 막내 제수씨는 노환으로 입원하는 시어머니가 어지간히 안타까웠는지 노인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을 해드린 것이다.

엄마는 통화방법을 몰라서 걱정스런 한숨을 몰아쉬셨다. 막내 제수가 1번은 큰아들, 2번은 둘째, 3번은 셋째, 4번은 막내아들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서 통화방법을 알려주었던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꼼짝 못하는 엄마는 자식들이 더욱 그리웠던 모양이다. 자식처럼 쓰다듬는 핸드폰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걸핏하면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가 반갑기도 했다. 누가 있거나 말거나 고함을 지르듯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주고받은 전화통화가 보름을 넘기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노환이 깊어지는 엄마가 전화통화를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하루가 더해지는 노환으로 지난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셨다.

한동안이나 엄마를 보내고 지독한 몸살을 앓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반년이 훌쩍 지나면서 엄마에게 핸드폰이 있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보고서야 엄마의 핸드폰 번호를 스쳐가는 눈동자가 화들짝 벌어진 것이다. 엄마의 전화번호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나도 모르게 시큼하게 젖어드는 눈망울에서 아른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글썽거리며 돌아서는 휴게실에서 도망치듯이 뛰쳐나왔다. 수상쩍다는 듯이 쳐다보는 동료들에게 나도 모르게 글썽거리는 눈물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버릇처럼 화장실에 주저앉아서 통화버튼을 눌렀더니 결번이라는 메시지기 흘러나왔다.

하지만 엄마를 부르면서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한동안 멈추지 않고 들려오는 듯했다. 엄마의 전화번호가 찍혀진 핸드폰을 내려다고 있자니 나를 부르는 엄마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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