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망을 품는 한해
작은 소망을 품는 한해
  • 김종례 <보은 회남초 교감>
  • 승인 2012.01.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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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종례 <보은 회남초 교감>

오늘 아침, 동창생 남편 부고 메시지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몇년 전 함께 근무할 때 그 분의 건강했던 모습과 유순했던 얼굴이 교차하면서 죽음의 경지가 내 나이에도 이제 현실로 다가왔음을 통감하는 아득한 순간이었다. 그때 '굿모닝' 하며 아침인사를 하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자 새삼 가슴이 뭉클하였다.

날마다 듣는 똑같은 목소리가 오늘따라 은혜로운 종소리마냥 들리다니…. 평범하고 자질구레한 일에 감사하지 못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남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겨 버렸다.

망년회를 한답시고 신묘년 마지막 석양을 미련도 없이 후루룩 떠나보내고, 힘차게 떠오르는 임진년 일출을 바라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첫달이 슬그머니 도망치고 있다.

작심삼일에다 조령모개를 반복하는 동안에 세월은 빗장을 열어 제치고 부리나케 첫 달력장을 넘기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일상의 커튼을 걷어 올리면 허겁지겁 시간의 노예가 되어 이내 밤을 맞이해 하루의 휘장을 내리기까지 쉼도 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연못에 떠다니는 작은 부평초처럼, 매일매일 삶의 끝자락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대인진미여시상 소인진미여시담(大人眞味呂是常 小人眞味呂是淡)'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대인은 평범하고 작은 일에 관심을 두지만, 소인은 특별한 일이나 좋은 일에만 관심을 둔다는 뜻이다. 신께서 큰 것만을 바라보지 말고 작은 것 속에 신비한 보물을 많이 숨겨 놓았으니 조심조심 찬찬히 찾아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작은 구름이 모여서 큰비를 내리듯이, 작은 심지 하나가 온 방안을 환하게 밝히듯이, 나비의 날갯짓이 커다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듯이 이 세상에는 작지만 신비스러운 비밀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

처음부터 큰 것만을 찾아 어영부영 헤매기 보다는 작은 일이나 작은 자를 소중히 생각하고, 작은 일에 커다란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작은 존재에 숨겨진 영혼의 불 밝히기를 소망한다면, 우리네 삶은 훨씬 단조로워 질것이다.

살맛나지 않더라도 전 국민을 놀라게 하는 경이로운 사건이나, 경쟁시대에 지쳐버려 자신의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서글픈 영혼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설령 돌파구가 없는 아득한 절벽에 부닥치더라도 내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것 속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발견하여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봄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으면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어 수십배 수백배의 열매로 다시 돌려주는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생각하며, 어쩌다 새겨지는 삶의 작은 흔적 하나에도 만족해하는 한해가 되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기약 없이 허공에 흔들거리는 커다란 존재에만 목숨 걸기보다는, 불꽃같은 욕심을 내려놓고 따스한 온돌 같은 작은 소망 하나를 정성껏 다독거리며,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한해가 되기를 자신에게 소망한다.

'눈이 와요!' 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방문을 나선다. 커다란 행운이 멀리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기엔 우리네 인생이 너무도 짧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 부고 메시지를 지우며 발등에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도 까르륵 웃는 아이들이 문득 보고 싶어 시동을 힘차게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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