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시상식 유감
연말시상식 유감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1.2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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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연말에 수많은 시상식이 있었다. 대부분이 연예인이 나오는 시상식이다.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오는 여배우들의 모습도 구경거리다. 시상식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가 된다.

연애대상으로 누가 뽑히면 그들끼리 감사한다고 말한다. PD, 작가, 선배에 대한 예의도 깍듯하다. 하나라도 잊으면 혼날까 봐 주절주절 외운다. 불안하다. 그러다 누구라도 빼놓으면 어쩔까 싶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잘 모른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잘생긴 배우를 바라보는 대가로 그들의 이름을 들어야 한다.

연말은 시상식 대란이다. 방송사마다 벌이는 것도 모자라, 종류도 왜 이리 많은지. 다 그게 그것 같은데, 마구 나눠 먹기를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공동시상도 많다. 방송사에서 상을 주지 않으면 배우가 화날까 걱정하는 것 같다. 상에 또 상이다. 남발이다. 몸값이 높은 연예인은 이 방송사 저 방송사에서 상을 겹치기로 받는다. 상인지, 미끼인지, 러브콜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상이란 무엇인가?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면 상을 받는다. '참 잘했어요'라는 상이다. 그런데 연예인들이 참 잘했는가? 무엇을 잘했는가? 연말 우리 사회에서 참 잘한 사람은 모두 연예인인가? 그러면 연예인만 잘했으니, 잘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한 해 동안 참 잘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린 경제인도 있고, 불 속에서 옆집 아가씨를 구한 소방관도 있고, 신제품을 개발한 사람도 있고, 무게 있는 소설을 쓴 사람도 있고, 해외오지에서 봉사를 한 사람도 있고, 연구실에서 어려운 문제를 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참 잘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연예인들은 이미 인기가 많은 사람이다. 상으로 반드시 들어내지 않아도 그들이 뭐 하는지 잘 안다. 상을 받은 연예인 정도라면 이미 경제적으로도 보상을 받았다. 상(賞)으로 보상(補償)하지 않아도 된다.

많이도 아니고 일 년에 한 번만큼은,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만큼은, 한해를 떠나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때만큼은,'무엇이 참 잘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어떤 삶이 옳은 것인지, 누구를 우러러야 하는지,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 떠올려보아야 하지 않을까?

연애대상 시상식은 굳이 연말·연초에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니, 가족이 모이는 이때만큼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사람에 대한 상찬(賞讚)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저런 아들이 뿌듯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시상식조차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방송사들이 얄밉다. 아예 '시상식'이 아닌 '시상쇼'라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겠다. 좋은 사회는 숨어 있는 참 잘한 사람을 들어내는 사회다. 나쁜 사회는 잘난 사람을 부질없이 다시금 잘났다고 하는 사회다. 잘난 사람끼리의 상의 독점은 사회를 멍들게 한다.

한류로 우리의 연예인들이 세계에서 잘 나가고 있으니 그래도 위안이 된다. 국익을 창출하는 그들이니 상을 줘야 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식구들이 함께하는 그때만큼은 아니다. 일 년의 하루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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