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없고, 잔소리없는 사회
어른없고, 잔소리없는 사회
  • 박상옥 <시인 다정갤러리 대표>
  • 승인 2012.01.1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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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시인 다정갤러리 대표>

박상옥 <시인 다정갤러리 대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식당을 가려고 골목에 들어서니 중학생인 듯 보이는 여학생 다섯 명이 좁을 골목을 차지하고 서 있다. 한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서 있고 두 명은 술을 먹었는지 빨개진 얼굴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 어린 조카생각이 나서 멈칫 서자 동행하던 친구가 소맷부리를 잡아당긴다. "잘못하면 망신만 당해. 그냥 가자. 어서!" 돌아서다보니 학생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불편하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어떤 언니의 말. 새 며느리를 보니 집안에 없던 딸이 생긴 듯 좋았단다. "우리 덧ㅃ럼 엄마처럼 편한 사이로 지내자구나" 했더니, 정색을 하고 다가선 며느리가 "정말 엄마처럼 편하게 말씀드려도 돼요"하더니, 주저하듯한 표정과 함께 야무지게 "그럼 어머니, 앞으로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 어처구니없고, 창피했단다. 혼자 �:� 대면서 밤을 새웠단다.

잔소리 좀 하자. 잔소리는 사람을 귀찮게 할지언정 해치지 않는다. 아기는 무려 천 번 가까이 '엄마'소리를 들어야 온전히 '엄마'를 발음한다. '엄마'로부터 조심하란 뜻의, '어비!-애비!'를 들으며, '어부바'를 알고 '아빠'를 알고 발음한다. 세상에 어떤 잔소리가 아기에게 들려주는 수없이 반복되는 가르침을 넘어서는가. 누구나 낯선 환경에선 대충 어린아이다. 철부지에겐 매일이 생의 신입생이다. 그럴 때 잔소리는 방향감각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며, 바른 생각의 지혜가 된다.

요즘 인기 있는 '아이유'란 가수의 '잔소리'란 노래에 대충 이런 가사가 있다.

늦게 다니지 좀 마/ 술은 멀리 좀 해봐/ 애처럼 말을 안 듣니 /정말 웃음만 나와/

누가 누굴 보고 아이라 하는지 / 정말 웃음만 나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니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물론 노랫말은 어른이 아닌 연인이 연인을 챙겨주는 '잔소리'다. 잔소리는 곧 사랑이라서 애정이 있는 곳에 근심의 말이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정의를 앞세워 법이 있다면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은 도덕이 아니던가. 어쩌다 우리사회가 도덕을 가르치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없어진 것일까. 어쩌다 어른들이 없어진 것일까.

어른이란 다 자란사람, 스무 살 이상의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긴 하지만 생의 어느 시점의 누구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건너 온 '어른'이란 말은 참으로 엄정하다.

나도 그 골목에서 "학생들이 낮술이 웬일. 가족들 걱정하니 일찍들 집에 가"라고 했어야 했다. 잔소리 없는 어른은 부끄러운 어른이다. 어른은 천번 만번 그가 살아온 이력에 근거해 잔소리를 해야 하는 존재다. 잔소리를 하자. 잔소리는 곧 관심과 사랑일진대 잔소리 해주는 어른이 없는 사회라니 너무 막막하지 않은가. 수명이 길어져 어른이 가득한 사회!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되려는가, 버림받는 어른이 되려는가. 우리는 모두 선택해야 한다. 패륜인 줄도 모르고 맘껏 먹고 살아 남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생존할 수만 있으면 그게 다인 줄 아는 이 지구를 멸망뿐인 짐승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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