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쁜이'
내 이름은 '이쁜이'
  • 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 승인 2012.01.1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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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우리 복지관에서는 지역 내 저소득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 무료급식 이용자 중에 최고령 어르신은 올해로 101세가 되었다.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양호하신 우리 어머님(복지관 어르신들을 아버님, 어머님으로 호칭한다)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복지관으로 달려와 점심도 나누고 윷놀이도 하면서 직원들은 물론 다른 어르신들과도 부지런히 관계 맺음을 지속하고 계신다.

총명함도 남달라서 우리 101세 어머님은 직원들의 특징을 콕콕 찍어 별칭으로 불러 주신다. 소란스럽지 않고 세심하게 어르신을 살피고 섬기는 직원을 '얌전이', 키가 크고 시원시원한 직원을 '휜칠이', 이런저런 정보도 열심히 제공하고 어르신들의 손과 발은 물론 눈과 귀가 되어 드리는 직원을 '만물박사' 등으로 어쩜 그렇게 직원들에게 딱딱 맞는 별칭을 붙여 주시는지 모른다.

우리 어머님께서 나를 부르는 호칭은 '이쁜이'이다. 다른 어르신들께서 곁에서 '관장님'이라고 말씀하셔도 우리 어머님은 나를 여전히 '이쁜이'로 부르신다. 나는 정말 이 별칭이 좋다. 정겹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아주 친근하고 가깝게 여겨져 마음까지 따뜻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우리 어머님이 서울 따님댁에 가셨다가 몇 달 만에 내려오셨다. 며칠 전 손님을 배웅하고 들어오는 길에 보니 복지관 복도 의자에 지팡이를 의지하고 앉아 계신 어머님이 보였다. 오래간만의 만남이 너무 반가워 '어머님'를 외치며 달려가니 주름 가득한 얼굴에 그토록 환한 미소를 띠며 의지하고 있던 지팡이를 내어 던지고 나를 덥석 부둥켜안으신다.

"아이고... 우리 이쁜이,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저도요, 어머님.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부둥켜안고 놓아 주실 줄을 모른다. 한참만에 팔을 풀어 주시고는 사탕 3봉지를 가져와 모두 나눠줬는데 이쁜이를 못 줘서 어찌하느냐며 안타까워하신다. 괜찮다고 머리를 저어도 어머님 마음에는 사탕 하나 손에 쥐여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이렇게 정이 넘쳐나신다. 그리고는 보고 싶은 사람 다 만났으니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고 일어나신다. 다음 날 복지관 식당에서 만난 어머님이 내 손을 잡아 복도로 이끄신다. 검은 비닐에 담긴 작은 사탕 한 봉지를 '밥 먹고 먹으라'며 내 손에 쥐여 주신다. 어제 일을 기억하시고 일부러 준비해 오신 것이다.

사실 지난 연말부터 복지 현장에서의 실천 활동이 많이 힘겹게 여겨지고 지친 마음으로 다소 무거운 시간들을 보냈음을 고백하여야겠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가졌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만큼 어르신들의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었음도 또한 고백하여야겠다.

내 삶에, 나의 복지실천에 힘이 되어 주시는 분들이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언제나 절망하지 않고 좌절하고 않고 달려갈 수 있는 것은 현장에서 만나는 이분들의 사랑의 힘이 원천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복지는 일방적인 수혜 과정이 아니다. 일방적인 수혜자와 제공자의 관계가 아니라 주고받음의 관계이며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서로서로 도와가는 관계이다. 복지는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관계 맺음의 깊이로 표현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로서 어르신을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사랑의 힘과 변화의 모습을 통하여 오히려 내가 힘을 얻고 행복을 배운다. 내 인생의 스승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우리 어르신이 불러 주시는 '이쁜이'에 새로운 마음을 다진다. '올해에는 우리 어르신들과 더 많은 행복과 나눔과 돌봄과 웃음과 건강을 만들어 나가야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복지관을 이용하시는 모든 분들이 '올해는 정말 행복했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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