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전한 자리, 소명(召命)
가장 완전한 자리, 소명(召命)
  • 박상옥 <시인·다정갤러리 대표>
  • 승인 2012.01.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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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시인·다정갤러리 대표>

박상옥 <시인·다정갤러리 대표>

'소명(召命)'이란 말은 종교적으로 신의 부름을 받아서 사제가 되고 목회자가 되었다고 말할 때 흔히 쓰입니다. '소명(召命)'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임무를 하도록 부르는 명령, 자신과 관련된 일의 내용이나 원인 따위를 풀어서 밝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존경으로 봅니다. 삶에 있어서 성역(城役)을 성역(聖域)으로 사는, 신부(神父)나 목회자(牧會者)나 스님들을 봅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성철스님, 법정스님의 삶을 성스럽다 여기고 우러릅니다. 그러나 꼭 수도자가 아니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나 역할을 성역(聖域)화 하고 일생을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소신껏 살아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도 많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가 그렇고. 어머니가 그렇고, 누이가 그렇고 오빠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속한 가정이나 학교나 회사가 평화로운 우리 사회를 만듭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만, 유명한 사람이 되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이고 힘을 과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빠르게 진화하면서 시대가 복잡해 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고, 스님들이 자비를 구하며 성불에 힘쓰지 않는다면, 신부나 목사가 '신의 일'과 '카이사르의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학생이 공부 대신 즐거움을 추구해 게임이나 싸움에 중독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이면서 아버지가 아니거나, 어머니이면서 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이지만 스승이 아니며, 병을 고치지만 의사(醫師)가 아닙니다. 어쩌면 판사는 판사가 아닐지도,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닐지도, 나무는 나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숲은 나무가 밀집해 있어 답답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어가 보면 나무는 제 팔 하나도 이웃 나무가 불편하도록 걸치지 않았습니다. 바람에 기대어 옆의 가지를 건드리긴 하지만 그 자리를 탐내지 않습니다.

가끔은 여린 가지가 큰 가지에 먼저 부딪치고 먼저 부러집니다. 경험이 없어서 정치가 얼마나 좋은지 저는 모르지만 참교육 현장의 선생님, 인기 연예인, 과학자, 의사, 등 나름의 전문가들에게 정치하게끔 부추기고, 결국엔 정치를 하게 합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니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큰 어른이셨던 성철스님은'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하셨습니다. 산은 산다워야 하고 물은 물다워야 한다는, 다시 말하면 산은 높고 깊고 무거워야 산이며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샘솟아야 물답다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물도 제 몫의 흐름을 멈추면 썩게 마련. 엄마답게 자식답게 아빠답게, 정치인답게, 기업인답게, 학자답게, 모두가 자기다움에 충실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유언이셨는데 말입니다.

못난 저도 가끔은 우두커니 존재와 찰나와 영겁을 생각합니다. 바쁜 일상 잠시라도 느긋해지려고 하고,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내 몫을 다하는 작은 생명으로 살다 가고 싶습니다. 욕심이 너무 많아 남의 것을 넘본다거나 앞질러가다 불행해질까 두렵습니다.

'소명'의 자리는,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프로가 되어야 하는 자리고, 장인(匠人)이 되는 자리고, 남들이 뭐라 든 생의 품격을 대변하는 가장 완전한 자리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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