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인민
국민과 인민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1.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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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그냥 '우리'라고 하나?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재일교포 가운데 한국인이 아닌 조선인은 '우리'를 어떻게 부를까?

알다시피, 민단(民團)은 남쪽이고 조총련(朝總聯)은 북쪽이다. 일본 언론은 ROK를 부를 때 한국이라 하고, DPRK를 말할 때 조선이라고 쓴다. 너희들이 뭐라고 부르건 신경 쓰기 귀찮으니 너희들이 말하는 대로 부르겠다는 태도다. 중국은 처음에는 거의 남조선이라고 불렀으나 최근에는 일본처럼 한국과 조선이라고 부른다. 친조선계 신문은 여전히 남조선이라고 부르지만.

그러나 일본이 한국과 조선을 동시에 쓸 때, 이것이 분단을 영구화하는 획책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중국이 그렇게 쓸 때도 그런 기분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이런 신경전 속에서 조총련계 학교는 '우리나라'라는 말을 고유명사화해서 썼다. 최근에는 '코리아는 하나다'라고 외국명칭을 통해 남북의 하나 됨을 강조하지만, 어차피 '우리나라'라는 말을 외국인들은 알 수 없으니 그것으로 나라명을 삼는 것도 일리 있어 보인다. 우리의 국호가 'URINARA'인 셈이다('우크라이나'가 아니다). 통일을 상징하는 국기를 '코리아기(旗)'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나라 깃발'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서구어권에서는 코리아라는 말밖에 없으니 모두 '남코리아, 북코리아'라고 부른다. 외국에 나가서 한 번씩은 당해보았을 터이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남이냐, 북이냐'를 묻는다. 코리아에는 남북이 모두 담겨 있어 발생하는 일이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하면서도 미국의 뉴스조차 반드시 '북'(North)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 정부 쪽에서야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그들에게 남과 북은 남의 일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우리나라의 이름조차 쓰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우리'를 부르는 말조차 헷갈린다는 데 있다.

먼저, '국민'(國民)이라고 해보자. 따질 것 없이 '국민학교'(國民學校)조차 이미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지금도 컴퓨터로 '국민학교'로 치니 저절로 '초등학교'로 바뀐다. 국민은 '황국신민'(皇國臣民)을 뜻하니 식민지 잔재를 없애자는 취지에서 국가적으로 학교명을 바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국민'이라는 말을 버젓이 쓴다. 대통령도 '국민여러분'이라고 부르고, 우리도 '우리'를 가리킬 때 아직도 '국민'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2012년 국민의 선택'이라며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점친다.

좋다. 그럼 '인민'(人民)이라고 쓸까? 요즘에야 나아졌지만 십수년전만하더라도 '인민'이라고 말하는 순간,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당연히 '인민'이라고 쓴다. 이때 인(人)은 보통 사람을, 민(民)은 하층민을 가리킨다. 우리말 용법에도 '천민'(賤民)이라고 쓰지 '천인'(賤人)이라고 쓰지 않는 것과 같다. 대신, 인은 '남'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己 自己)외 상대된다. 프로레타리아를 강조하는 공산주의에서 '민'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독립선언문에서 '우리, 피플은'(We, the people,)이라고 하여 자기네를 '평등한 권리의 주체'로 정의했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 사람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민'과 '인민'을 뛰어넘고, '다중'과 '민중'을 껴안는, '우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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