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밥상머리
  • 박상옥 <한국문협 충주지부 사무국장>
  • 승인 2012.01.0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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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한국문협 충주지부 사무국장>

우리말 중에 ‘밥상머리’라는 말이 있다. 왜 밥상의 한쪽을 ‘머리’라고 했을까. 머리는 몸을 지탱하는 정신이니,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뜻’ 일까.  

나의 어린 시절엔 대부분이 대가족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은 한 마을에 삼촌가족과 친척집을 거느리고 사는 큰댁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집이다. 세끼식사의 기본이 15명, 명절이나 생신이면 적게는 30여명이 밥상머리에 그득했으니 365일 마를 날이 없는 어머니의 광목앞치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그러나 86세의 어머닌 그 시절을 종종 그리워하시며 “그 때는 참 시끌시끌하고 복작복작했는데 이젠 너무 조용하고 심심하다” 하신다. 엿을 고고 두부와 약과와 강정을 만들어 생신과 제사와 명절을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며 어머닌 자부심 가득 행복한 표정으로 종부시절(宗婦時節)를 전해주신다.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의 어머니는 싱글맘, 워킹맘 학생이라는 세 가지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았다 한다. 그녀는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밥상을 들고 아들의 침대로 가져왔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그녀에게 있어 아침식사 시간은 유일하게 아들과 함께 누리는 교육과 행복의 장이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된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해서 가장 누리고 싶은 일로 가족들과의 식사를 꼽았다는데. 그는 아이들과의 아침식사를 위해 회의 시간을 조정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가족식사에 참석하려고 집무실을 떠났을 때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일정에 차질 없이 일했다 한다. 그는 세계적 대통령이지만 동시에 행복한 시간을 가꿀 줄 아는 소시민적 인간인 것이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새벽마다 헌신적으로 시간을 당겨쓰면서 아들과 밥상을 마주한 데서 오는 힘이 아닐까. 우리나라 보건복지가족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의 16%, 중·고생의 48.5%가 ‘부모와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서로가 할 일에 쫓겨 분주하다보니 여유로운 소통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밥상머리교육’을 전인교육의 기본으로 알았던 대한민국이 사라져가고 가족이 습관적으로 서로의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대화의 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배불러도 불행한 사람들. 자살률 높은 나라라는 오명이 이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밥상머리교육이 인성뿐만 아니라 지적발달을 이루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과학적인 연구결과로 밝혀졌다. 콜럼비아대학 연구팀이 밝힌 놀라운 실험결과는 ‘하루 20분 가족식사가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는 사실이었고 하버드대학의 연구 실험결과 는 ‘아이가 식탁에서 배우는 어휘량은 책을 읽을 때의 10배’ 라는 것이다. 또한 ‘가족식사 횟수가 적은 아이는 흡연, 음주 경험률이 높다’고 한다. 못살아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일상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명절이라고 객지 나가 살던 두 아들이 온단다. 내게는 마음 구석구석 웅크리고 있던 나태함을 털어낼 시간이다. 새삼스레 집 청소를 하고 발걸음 가볍게 시장을 보고 국을 끓이고 아들들에게 보낼 밑반찬을 만드느라 늦도록 부산을 떤다. 종부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내게도 ‘희생함으로 행복한 세상 모든 어머니의 유전자’가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젠 굶는 사람 없이 잘 산다는 대한민국 우리나라. 모두가 밥은 먹고 사는 데도 배고픈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밥상머리’ 정신적 복지를 생각한다.

◈ 필진소개

한국문협 충주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충주에서 다정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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