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아침에 하얀 눈꽃을 바라보며
임진년 아침에 하얀 눈꽃을 바라보며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2.01.0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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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한동안이나 분주하게 쫓아다니는 연말을 보냈다. 해마다 연말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가 제법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묘(辛卯)년을 마지막 보내는 날에도 지인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아침과 저녁에 날아드는 소식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어느 한 곳도 빠지지 못하는 장례예식장이 하필이면 서울과 제천이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이나 망설이다가 서울에는 전화로 인사하는 위로를 드렸다. 무엇보다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고속도로가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향인 제천으로 쫓아가는 길목에도 적잖은 승용차들이 밀려들었다. 신정을 고향에서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제법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쫓아가는 장례예식장을 다녀와서는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피곤한지 집으로 들어서면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한낮이 되어서야 일어나는 침대에서 임진(壬辰)년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때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하얀 눈꽃이 휘날리고 있었다. 창문으로 새어드는 바람이 또한 제법이나 싸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눈꽃이 싫지는 않았다. 임진(壬辰)년을 시작하는 첫날을 축복하듯이 휘날리는 눈꽃이 제법이나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얀 눈꽃을 바라보며 시작하는 임진(壬辰)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헤아리면 스물아홉 번째이다. 천간(天干)이 임(壬)이고, 지지(地支)가 진(辰)으로 흑룡의 해라고 한다.

흑룡은 비바람의 조화를 부린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개천에서 용(龍)났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비상하는 용기와 출세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동양에서는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동물이 또한 흑룡이라고 한다. 흑룡의 해에도 하얀 눈꽃처럼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신년에는 누구나 무엇을 해야겠다고 계획하는 일들이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올해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일들이 제법이나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건강이다. 신체적으로 부자연한 것은 건전하고 강력한 정신력으로 극복하지만, 정신적인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한생의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한 삶에서 더하는 소망이 많기도 하다. 나 또한 건강에 더하는 소망이 좋은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지천명에서야 시작하는 문학공부가 부끄럽기도 하다. 가끔은 괜스런 욕심이라고 자책하지만, 박사도 때로는 초등학생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고, 백 년을 살면서 총명하고 후덕한 인품으로 존경받는 현자(賢者)도 세 살 먹은 어린애보다 어리석을 때가 있다고 한다.

나는 어느 사이에 적잖은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위해서 공부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멈추면 시작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에 멈추는 문장실력이 또한 안타깝기도 하다. 여전히 부끄러운 작품을 멈추지 않는 것 또한 배움이라는 것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는 진리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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