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학생 자살이 남긴 것
대구 중학생 자살이 남긴 것
  • 한인섭 기자
  • 승인 2011.12.2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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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사회부장

집단 괴롭힘 끝에 자살한 대구 중학생 사건은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엿보게 한다. 지난 20일 사건이 발생한 이후 A4 넉 장 분량의 유서와 괴롭힘을 가한 동급생들이 자살한 학생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 메시지 내용까지 알려져 일파만파가 됐다. 동급생들이 빈번히 가했던 폭행 정도와 수법, 피해 학생의 심경, 신체 상해 상태까지 속속들이 드러났다.

유서에는 전선을 목에 감아 끌고 다니며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고 한 사실과 문자 협박, 같은 반 친구 2명에게서 물고문을 당한 사실도 적혀 있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멍이 남도록 폭행당한 사실과 가해학생들에게 줄 돈을 마련하느라 몰래 아르바이트까지 했다는 내용까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장기간의 괴롭힘을 견디기 어려웠던 13살 중학생은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글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충격적인 사실에 우선은 내 아이의 '안전'부터 심각하게 챙겨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가해학생들이 '일진회'와 같은 폭력서클에 연루된 아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나, 성적도 중위권 정도를 유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또래 집단의 왕따나 집단 괴롭힘이 은밀히 이뤄지곤 하는 탓이다. 학교나 피해 학부모도 이런 특성 때문에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난감함을 더한다. 결국 학교라는 공간과 청소년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장탄식에 이르게 된다.

피해사실을 부모나 학교에 제때 알리기만 했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비극은 왜 되풀이되는 것일까. 대구 사건의 피해 중학생이 남긴 유서에 답이 있다. 피해학생인 권군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경찰에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보복이 두려웠다"고 적었다고 한다. 학교나 경찰, 학부모가 집단 괴롭힘의 실체에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해결 능력도 없다는 점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 일선학교 돌아가는 사정에 조금이라도 이해가 된다면 무슨 소리인지 금새 알아 차릴 만한 얘기이다. 특정학생에 대한 집단폭력이나 동급생 간에 벌어지는 드러난 폭력행위조차 제어할 장치가 사실상 없는 게 현실이다. 교사에 대한 폭력, 폭언도 마찬가지이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라는 기구가 존재하지만, 학교당국이 이런 유의 사건을 쉬쉬하기 쉬워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다.

어렵사리 위원회가 열려 교사, 학부모, 운영위원회, 경찰과 논의하다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거나 솜방망이 조치를 내놓기 쉽다. 특히 의무교육 과정인 중학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문제학생에 대해 학교당국이나 교사들이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보다 차라리 방임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한 게 현실 아닌가.

학교당국이나 교사들조차 방임할 정도라면 집단 괴롭힘이나 왕따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어떨까. 문제 제기를 하면 마땅히 피해 당사자에 대해서는 구제효과와 재발방지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할 텐데 학교사정이 이렇다면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폭력이나 집단 괴롭힘이 발생하면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명확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교사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이다.

잇단 중·고교생들의 충격적인 자살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당국은 '사후약방문격' 처방은 나오곤 한다. 그래도 잊힐 만 하면 유사사례가 터지니 학부모들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학교에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거나, 아예 경찰을 상주시키라는 주문이 나올 법한 시점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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