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7>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7>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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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방아
'하얀 박꽃' 반으로 쪼개 정겨움 담아

있는 자도 없는 자도 평등하게 쓰인 '바가지'

이사를 가거나 시집혼수품 되어 요긴하게 쓰여

'푸른 처마 밑에서

얼굴 감추고

햇님보고 내외하던

박꽃아가씨

달님 거동 바라보고

곱게 단장해

이슬 총각 입맞추며

방긋방긋'

'박'을 찬미한 글이다.

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지붕개량'을 하기전 가을이면 어느 시골마을이던지 초가지붕 위에 흰박이 주렁주렁 얹어 있는 모습이 평화로운 우리 농촌풍경의 대명사였었다.

가을 풍취를 아름답게 장식했던 '박'은 봄에 처마밑에 씨를 심어 줄기가 뻗는대로 새끼줄이나 나뭇가지로 지붕에 맞닿게 해 지붕위로 올렸다.호박꽃은 주황색인데 반해 박은 하얗게 꽃이 피는데 위에 든 시는 달빛에 드러난 하얀 박꽃의 아름다움을 표현 한 것이다.

박은 서리가 내리기 직전에 수확,반으로 쪼개 쇠여물에 넣고 끓여 속을 파내고 겉껍질을 말려 단단한 '바가지'를 만든다.박속은 나물로도 쓰였는데 채를 만들어 제사 음식으로 쓰였다.

바가지는 쌀을 씻거나 곡식을 퍼 담고 우물과 간장을 뜨기도 하고 삶은 보리쌀을 건져 물기를 말리기는등 다용도 그릇 대용으로 사용됐다.

선사인들은 흙을 빚고 그것을 나무불로 구워 그릇(자기)으로 사용했고 나무를 깎아 생활도구로 이용하다가 박이라는 식물을 발견, 이것을 발전시켜 다양한 그릇으로 사용했다.

우리나라 풍속에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 시집 보낼때 장농을 짜주고 시집 보내기전 박을 키워 좋은 것만 골라 결혼가마 바리에 혼수품(그릇)으로 실어 보냈다.

바가지는 전통사회에서 만민이 공통적으로 사용해온 생활도구였다. 바가지는 우물터에서 물을 퍼담거나 쌀을 씻어 돌을 골라내는 역할도 했고 때로는 가난한 집 여인들은 바가지에 밥을 담아 먹기도 했다.

울퉁불퉁 뽀얀 먼지 이는 시골길에서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이사가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달구지 위에는 여러가지 살림살이들이 놓이고 그중에 주렁주렁 꿰달은 바가지 꾸러미가 눈에 뜨이고 무거운 장독도 보이는데 간장독 안에는 바가지를 엎어 퉁당퉁당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빛나는 대목인데 바가지는 달구지의 흔들림으로 간장이 출렁출렁 넘쳐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옛날 음력 6월6일 유두날에 여인들이 밖으로 나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고 끼리끼리 모여 물동이에 물을 채우고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둥둥 두들기며 노래하고 춤추던 풍속도 있었다.

바가지 장단은 안방 깊은 곳에서 은근하게 즐기던 여인들의 유희장단이기도 했다.

매년 정월보름때면 '복바가지'를 나눠 갖는 풍습이 있는데 복을 주는 복바가지는 생긴 모양이 좋고 큰것 일 수록 인기가 좋다. 부잣집 곳간에는 해마다 생산되는 복바가지가 늘고 자식이 세간을 나면 나누어 주기도 하는데 시부모를 잘공경하고 살림살이를 잘하는 예쁜 며느리가 좋은 것을 받아갔다.

'톱질하세 톱질이야/실그렁 실그렁 톱질하세'

보은의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를 심어 엄청나게 커진 박을 톱으로 쪼개는 흥부의 박타는 노래소리가 곧 쏟아질 금은보화를 상상하면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얼굴가득 흐뭇한 웃음이 번지는 계절이다. /글 사진 김운기편집위원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6>

통판돌 위에 조금 작은 둥근돌 옆으로 세워

연자방아, 벼·보리 찧을 때 비질을 홈통안으로

'연자방아'는 벼를 찧는데 필요한 농기구였다.

거두어 들인 벼를 햇볕에 널어 잘 말린다음 이를 연자방아에 집어 넣고 찧어서 껍질을 볏겨내 쌀을 만든다.연자방아는 남쪽지방에 많았고 제주도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연자방아는 물이 없어 물레방아를 돌릴수 없는 들녁에서 많이 사용했는데 그역사는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연자방아는 '연자매'라고도 하는데 넓고 둥근 통판돌 위에 그보다 조금 작은 둥근돌을 옆으로 세워서 이를 말이나 소에 멍에를 씌워 원을 그리며 돌게해 벼를 찧는 것이다.

벼를 찧는 방법은 돌판위에 얹어진 돌을 대각선으로 나무 두개를 엮어 서로 연결시키고 그다음 소에 멍에를 씌워 연자방아 옆을 곧장 따라 돌게하면 되는 것으로 소나 말이 연자매를 아무리 많이 끌어도 그자리를 맴돌 뿐이다.

이때 판돌이의 홈이 파여진 곳에 말린 벼를 집어 넣고 윗돌이 이곳을 짓이기며 지나가므로 벼와 벼, 그리고 벼와 판돌, 윗돌과 아랫돌이 마찰하여 껍질이 볏겨지는 것이다.

연자매를 한번 돌리는데는 벼한가마 정도가 들어가는데 연자방아가 계속 돌아가면서 벼의 껍질이 볏겨지기 시작하면 사람이 따라 돌면서 벼의 상태를 살펴보고 연자매를 세워 연자매 속에 들어 있는 키로 까불리면 쌀과 껍질, 왕겨와 싸래기로 쉽게 나눌수 있다.

연자매를 돌리는데는 소나 말이 있어야 하고 소부리는 남정네와 방아를 쫓아가며 비질하는 여인과 키질하는 여인등 세사람이 필요하다.

연자방아는 벼만 찧는 것이 아니고 보리도 찧는데 벼나 보리를 찧을 때는 껍질만 벗기기 때문에 비질을 홈통안으로 하고 밀가루나 쌀가루를 빻을 경우 밀이나 쌀을 홈통 밖으로 밀어내 곡식의 알갱이가 돌과 돌사이에 끼어들어 가루로 빻아지도록 한다.

연자방아로 곡식을 찧으면 연자매 자체가 무거워 쌀이 부서져서 싸래기가 많이 생긴다.

호남의 쌀부자 집들은 일년내내 연자방아를 돌려 쌀을 찧었다고 한다.

큰 돌을 우묵하게 파내, 곡식넣고 쿵쿵

시어머니 미워하던 보리절구 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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