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11>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11>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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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막
흙내음 물씬 풍기며 밭 한가운데 우뚝 세워진 원두막

농작업중 휴식와 도둑으로부터 참외 수박을 지키기위해 설치된 원두막은 지난날 농촌풍경의 대표적 추억으로 남아있다. ⓒ 충청타임즈

시골 밭둑이나 냇가 제방에 우뚝하게 세워졌던 원두막을 보노라면 고향의 짙은 흙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무더운 여름날 쑥을 뜯어 모깃불 피워 놓고 시원한 우너두막에 올라 가족들과 혹은 연인들과 우적우적 참외를 깎아 먹던 기분이라니, 원두막의 그 아릿한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밤이 깊어지면 벌거벗은 악동들이 참외서리를 하러 밭에 들어 왔다가 할아버지 헛기침에 놀라 달아나던 아름다운 이야기도 원두막에 서려있다.

원두막(圓頭幕)은 거칠게 다듬은 나무로 네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중간에는 사람이 거처 할수 있도록 마루를 설치하고 원뿔형태의 지붕을 만들어 놓은 공중 누각이다.

중간마루에는 멍석이나 가마니를 깔아 방을 들인 형태로 사람이 올라 앉아 있거나 잠을 자도록 했으며 사방으로 뚫린 창으로 참외밭 끝까지 감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특히 사면에 햇볕도 가리고 소나기가 쏟아질때 닫을 수있도록 나무받침대로 거는 들창문이 있었다

사람이 오르내리는 출입구에는 사다리를 놓아 쉽게 오르내릴수 있도록 했다.

원두막은 사람키 정도의 높이에 마루가 설치됨으로써 통풍이 잘되다 보니 냇가 언덕에 세워진 그곳은 언제나 싱그러운 바람이 감싸여 있어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기도 했다.

원두막은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우리나라 농촌에서 집과 농경지가 멀리 떨어져 있어 오가는데 시간을 줄이고 당시 최고의 환금작물인 참외 수박등의 도난방지와 농작업중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면 이를 피하는 장소로 요긴하게 쓰였다.

원두막의 기원은 선사시대부터 시작됐을 것으로 보는데 그시절 사람보다 맹수나 들짐승 수가 더많아 자연동굴에서 집단으로 생활했던 사람들이 이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나무위에 집을 지어 생활한데서 유래를 찾을수 있다.

지금도 열대지역에서 나무위에 집을 짓고 사는데 원두막집은 뱀과 맹수들의 피해를 막을 뿐만 아니라 습기가 많은 땅에서 기거하면 여러가지 품토병이 생기므로 질병 예방에도 좋은 효과를 본다.

원두막집은 다락집을 탄생시켰고 다락집은 누각으로 발전하여 남원 춘향이 이야기가 담긴 광한루나 조선 왕조의 혼이 깃든 경회루 같은 궁궐로도 발전했다.

옛기록을 보면 고구려인들은 추위를 막기위해 땅을 파서 움집을 만들고 온돌을 놓아 난방을 했으며 백제인들은 다락집을 지어 마루방에서 기거했다고 적혀있다.고구려 온돌방은 우리 민족의 전통 난방방식으로 자리매김했고 간접난방 방식인 보일러 난방이 주를 이룬 지금도 농촌에 가면 나무 아궁이가 설치된 재래식 온돌방이 있어 따스했던 아랫목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원두막을 보면 노란 참외밭과 밀집모자 쓴 할아버지의 인자하신 얼굴이 생각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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