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8>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8>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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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쩡이와 알곡 가르는 바람의 원리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농촌에서는 눈코뜰새 없이 바빠진다.

특히 주부들은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뒷바라지에다 밭에서 수확한 잡곡들을 타작하여 ‘키질’하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키질은 콩타작, 팥타작, 들깨, 참깨,녹두, 벼타작등에 있어 손길이 안 가는 곳이 없을 만큼 중요시 해왔던 도구다.

너른 바깥마당에 장정들의 콩타작 도리깨 두들기는 모습이 풍년농사를 뜻하는 것같아 보기 좋다.

서너명이 둘러서서 획획 내려치는 도리깨질이 시작되면 여기저기서 콩튀는 소리가 들리고 도리깨질이 끝나고 콩대를 걷어내면 알곡과 콩깎지만 남는다.

그것을 ’키’에 담아 위로 던졌다 다시 받으며 바람을 일으키면 솜씨 좋게 껍질은 날라가 버리고 알곡만 골라내는 할머니의 키질 솜씨에 모두가 감탄하게 된다.

키질은 탈곡한 콩이나 팥, 녹두등을 키에 담아 곡식과 함께 섞인 검불,잔돌과 먼지등을 바람의 힘을 이용해 불어내는 일이다.

여인들이 쪼그리고 앉아 키속에 한바가지씩 곡식을 퍼넣고 팔힘을 이용해 아래위로 ‘까불기’를 하면 가벼운 껍질과 흙먼지는 바람에 날아가고 잔돌과 쭉정이는 키앞쪽으로 몰리는데 이마저 버리고 알곡만 챙겨 그릇에 담는다.

몇번을 위로 던졌다가 다시 받아내는 키질은 누구나 쉽게 손만 흔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반복된 노하우에 의해 늙으신 어머니, 할머니들 솜씨가 더 좋다. 간혹 어른들이 갓 시집온 새색시에게 “새댁, 키질 할 줄 모르는 구먼. 키질은 키 허리를 단단히 잡고 위아래로 키를 까부는 틈틈이 좌우로 약간씩 흔들어 키의 허리에 해당하는 부위를 손으로 살짝살짝 쳐주면 쭉정이와 잔돌이 앞으로 몰려 알곡만 남는 것이여.” 하는 꾸중을 받으며 기술을 익혀 농촌아낙으로 늙어가는 것이다.

우리말에 ‘까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진중하지 못하고 촐랑대는 사람’을 뜻하는데 키질할때 ‘까부르다’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농촌아낙들이 여린 팔로 팔랑팔랑 키질하는 모양은 보기는 좋지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쉬지도 못하는 고통은 농경사회의 숙명으로 받아졌다.

우리풍속에 ‘집안으로 보고 키질하면 복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어 바람이 거세 집쪽을 향하게 되면 키질을 중단했다가 다시 하고 특히 사람이 모인 방향도 피한다.

키는 봄에 가늘고 곧은 버드나무 가지를 베어 껍질을 벗겨 두었다가 키를 만들고 대나무가 많은 남쪽지방은 대나무를 쪼개 키를 만들기도 한다.

대가집에 키가 많이 걸린것을 보면 그집의 농사짓는 양과 부녀자들의 숫자를 점칠수 있었다.

또한 키도 사람의 체구에 따라 크거나 작게 만들었고 가을철이 되면 키를 팔러 다니는 장사치가 마을을 찾아 다니며 팔기도 했다.

지금은 ‘풍채’라는 농기구와 트랙터 자체에서 풍채역할을 하는 바람개비가 있어 껍질과 알곡을 구분해 키를 사용하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보기 힘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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