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9>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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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아
물레가 돌면 송이 송이 흰 구름 뜨락에 내려앉네

빠드득 빠드득, ‘씨아’에서 목화씨 빠지는 소리, 섬섬옥수 젊은 아낙의 손길에서 목화씨가 빠지고 목화솜이 딸려 들어가는 모습이 볼만하다.

목화씨를 빼내는 ‘씨아’는 가는 홍두깨 같은 나무 양쪽에 톱니같이 홈을 파서 만든 과학적 기능을 갖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씨아는 모양도 아담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돌아가는 모습도 신기롭다.

추석을 지나 가을이 깊어지면 전국 방방곳곳에서 하얀 목화송이가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목화가 들어온 것은 고려 공민왕 13년(1364년)의 일로 문익점이 서정관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금지된 법을 피해 붓두껍속에 10알의 목화씨를 가져와 장인 정천익에게 주어 그중 한알이 싹을 틔워 전국에 전파한 섬유질 식물이다.

농가 집집마다 목화를 심어 ‘씨아’ 틀에 넣어 씨를 빼고 실을 뽑아 베틀에 얹어 무명천을 짜내는 것은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누나 등 여자로 태어나면 숙명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길쌈이었다.

목화의 생산은 음력 3월 하순부터 4월초순쯤 보리밭 헛골에 씨앗을 뿌리면서 시작된다.

목화는 씨뿌리기 전에 오줌동이에 잠깐 담갔다가 꺼내 나무땐 재를 묻혀 말렸다가 사용한다.

보리골에 파종한 목화가 싹이 나면 적당한 간격으로 솎어내고 보리를 베고 나면 골을 갈아 흙으로 북주기를 한다. 목화는 사람의 인분으로 키워야 잘자란다. 목화의 성장에 따라 3번정도 인분을 주고 비료는 마지막 한번만 준다.

목화가 자라 잎이 나오면 윗순을 자르고 여기서 두세마디 자라면 순주기를 해야 한다.

목화는 음력 7월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꽃이 지고나면 푸른 몽우리가 달리는데 이것을 ‘목화다래’라고 하는데 어린 목화다래는 달콤한 물이 들어 있어 개구장이들이 오가면서 따먹기도 했다.

목화다래는 커지면서 고동색으로 변하고 입을 쫙 벌려 하얀 목화솜을 토해내는데 늦가을 목화송이를 수확해서 말렸다가 농사일이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목화 갈무리가 시작된다.

시어머니, 며느니, 딸들이 한자리에 모여 큰며느리가 씨아를 돌려 씨를 빼내고 시누이는 활로 솜을 피어내면 시어머니가 수수깡이에 솜을 말아 고치를 만든다. 고치는 한곳에 모았다가 물레를 돌려 실로 뽑아 베틀에 얹어 무명천을 짜내면 목화농사가 끝난다.

목화는 무명천을 짜고 솜으로 이불을 만들어 우리 백의민족의 겨울나기를 크게 도왔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폴리에스텔이니 양모 등 첨단 섬유들이 개발돼 첨단 방직기계로 옷감을 짜내다보니 이제 농촌에서도 목화농사를 짓는 곳이 없어지고, 씨아나 물레질하는 일도 없어져 씨아질 하는 모습을 볼수 없게 됐다.

과학과 시대의 발전으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시절을 보낸 한사람으로서 아련한 추억에 아쉬워 목화를 노래한 김형자님의 글을 음미해본다.

‘구름송이 따다가/뜨락에 펼친다/송이송이 문익점 선생 모습 보는듯하고/송이송이 물레노래 들리는 듯 하고/잠자리 낮잠 자는 한낮/뜨락엔 뭉게 구름/하늘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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