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5>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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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인기가수 태진아가 감정을 다잡아 목이 터질듯 끊어질듯 열정적으로 부르는 ‘앞산노을 질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던 흙에 살던 어머니, 삼베적삼 기워입고…’의 ‘사모곡’노래 가사처럼 호미는 우리 어머니들 삶의 애환과 궤를 같이 한다.

일제시대와 광복시대, 조금 더 나아가 60∼70년대를 살아온 중년 이상의 국민이면 이노래를 듣다가 가슴을 울리는 노랫말에 옛날 가난한 시절 뙤약볕에 나가 호미자루 쥐고 콩밭을 매던 어머니의 땀에 젖은 모습을 떠올리고 코끝이 찡해 올 것이다.

우리 농촌 정서에 꼭 등장하는 호미. 국어사전에는 ‘김을 매는데 쓰는 농기구의 하나로 끝이 뾰족하고 위가 넓적한 세모꼴 쇠날에 가는 목이 휘어 꼬부라지고 둥근 나무토막의 자루가 달림’이라고 했고 방언으로 ‘호맹이’, ‘호마니’, ‘고맹’ 등으로 부른다.

호미가 언제부터 쓰였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농사일에서 호미는 가장 쓰임이 많았던 농기구중 하나였다. 특히 밭에서 김을 매고 풀을 뽑는데, 또 땅을 파서 씨앗을 묻고 흙을 덮는데 쓰임새가 많아 호칭과 이름도 많았다.

흙을 파는데 흙밥을 잘넘기는 것은 ‘배부른 호미’, 긁기가 좋은 ‘등굽은 호미’, 잘도 들어간다 ‘밑빠진 호미’, 도라지나 나무뿌리 줄기를 캐는데는 ‘거위목 호미’, 돌밭에 잘어울리는 ‘날세운 호미’, 젖먹이 손바닥만 하구나 ‘애기호미’, 힘좋은 남정네가 쓰는 ‘머슴호미’ 등 종류도 많다. 필자가 1988∼1990년까지 소백산맥을 답사 취재하면서 어느 화전민 집에 들렀는데 10자루가 넘는 호미가 가지런하게 꽂혀 있어 신기로움을 느꼈다.

화전민 말로는 봄에 씨앗을 묻는 호미가 있고, 잔풀이 나면 밭을 매는 호미, 고랑 흙을 파 북을 주는 호미, 도라지 캐는 호미, 감자 캐는 호미, 큰풀 뿌리를 잘라내는 호미 등 쓰임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비옥한 들녘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밭을 매고, 논을 매고, 고구마나 감자를 캐는 정도의 쓰임이 있지만 산골 비탈진 화전민들의 호미 쓰임새는 크기도 달랐다.

호미를 가리켜 ‘거위목’이라고 한다. 호미 끝은 부리를 닮았고, 나무자루하며 세심히 관찰을 해보면 놀랍도록 거위목을 닮은 꼴이다.

호미는 거위가 먹이를 찍어 먹는 것처럼 생겼고, 그런 동작으로 땅을 파는 모습이 된다.

호미의 기원은 초창기 구부러진 나무를 끝을 깎아 땅을 팠을 것이고, 2000년전 초기 철기시대부터 쇠로 만든 호미가 쓰여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세월의 변천에 따라 형태가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보여진다.

호미는 우리 농사연모(도구)중 가장 오래된 것이고 쓸모가 많았으며, 여러명이 밭을 매거나 논을 맬때 힘든 것을 잊으려고 논매는 노래중에 호미가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고장에 전해지는 농요 한수를 감상해 보자.

‘어허우 호호우 잘도하네/헤호후이여 잘하고도 잘하네/호미자루 단단히 잡고/그나 땡기나 보세 헤어허 어허리어/이논배미 어서 매면 새참바리 들어올까/어허허 호호야/신 가지끈 호미잡아 땡겨나 주게/헤헤이 잘하고 잘도하네/에헤이야 잘도하네.’ 노랫말을 따라하다보면 흥이 절로 나는 것 같다.

이런 호미가 각종 농기구의 발달로 그 쓰임새가 점차 적어지고 종당에는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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