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자
행복한 여자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1.12.20 2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진순 <수필가>

책 속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여기저기 문학 단체에서 쏟아져 나온 동인지와 수필집과 시집이 머리맡에 수북이 쌓여 있다. 정신 사나울 만큼 어질러진 방을 보며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저물어 가는 2011년을 보내며 손익 계산서를 뽑아 본다. 농부가 농사를 지어 고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을 까맣게 잊게 만드는 계절이다. 추수를 해서 방아를 찧고 갈무리해다 놓은 곡식을 보면서 부자가 부럽지 않다. 힘든 때 생각하면 쌀 한 줌 콩 한 됫박을 인심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잠깐뿐이다. 형제와 자식 이웃들에게 인심 쓰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천심을 가진 농부이기 때문이다.

내년에 농사지을 씨앗을 제일 먼저 챙겨두고 항아리마다 곡식을 채우며 만족한 표정이 되어 희망의 꿈을 창고 안에 하나하나 정리를 하는 농부의 마음을 그대들은 아시는지요

연말이면 우르르 한꺼번에 나온 책들을 연하장 대신 이곳저곳으로 붙이기도 하고 소속되어 있는 모임이나 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농부의 마음이 되어 한 해 동안 써 놓은 글로 책을 만들어서 영혼의 양식이 돼라고 드리지만 받는 사람들의 마음도 각양각색이라는 것을 느낀다. 심지어는 자기 자랑하느라고 책을 준다는 사람도 있고 글 쓰는 사람들 돈 자랑 하느라고 이런 짓을 한다는 이도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 알뜰하게 부실한 글이지만 읽어 주는 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글 쓰는 이들의 똑같은 마음일 게다.

한 줄의 글을 읽고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다면 글 쓰는 사람으로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일 것인가.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지적인 분들은 지적인 책을 찾아 읽으면 되고 자기 눈높이에 맞춰 책을 골라서 읽는다면 보잘것없는 글 한 편을 쓰기 위하여 고민하며 쓴 글을 잘 됐느니 못 됐느니 평가를 하기 전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신문에 온 정렬을 바쳐서 글을 써 보내지만 원고료 제대로 주는 신문사도 흔치 않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은 병이 걸렸어도 단단히 걸린 것이 틀림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름다운 사회, 인성 교육이 제대로 된 곳이 어디인지 그립고 그리울 따름이다.

임진년은 흑룡의 해라며 벌써부터 여의를 물고 하늘로 승천을 기원하는 소리가 웅성거리며 아우성으로 변하려고들 하고 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이 순탄하게 흐르길 기원하면서 석양을 붉게 물들이며 아쉬움을 남기고 가는 해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고달프고 힘들었던 가슴 아린 추억일랑 모두 소멸될 수 있도록 한번 마음껏 취하고 싶다. 망각의 강을 건너 임진년 새해를 새로운 각오로 맞이하고 싶은 소망의 씨앗을 책 속에서 찾아보려고 밤새워 글을 읽어 보련다. 눈물이 나오게도 하고 껄껄껄 웃게도 하는 글들이다. 그런가 하면 희열을 느끼게 만드는 글도 있다. 밤새워 읽어도 눈 어두운 것이 야속할 뿐 재미있는 책이 있기에 행복한 여자, 난 이래서 행복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