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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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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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쉼터, 그곳에서
지난해 시월 어느 날 아연실색할 일이 있었다. 사연인즉 1950년 12월 30일 본인의 육본 개인기록 카드에 금성화랑무공훈장 수훈자로 등재되었다는 국방부의 연락이 온 것이다. 며칠 후 육참총장, 행정자치부장관의 훈장수여증서와 대통령의 국가유공자인정서와 함께 해당훈장과 부상으로 기념손목시계가 배달되어 왔다.

장장 반세기가 넘은 55년 만에 주인을 찾아 온 것이다.

고도의 문명발달과 21세기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신분이 확실한 기록카드가 엄존하는데 이제서야 주인을 찾았다니. 택배회사 직원으로부터 짐짝처럼 넘겨받은 나의 아픈 과거의 흔적들을 손에 쥐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 고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며칠 후 아들 내외와 함께 공주에 있는 산사 관광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대전국립묘지에 들렸다. 알고 보니 산사관광은 핑계였고, 조국이 공산침략을 받아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걸고 싸운 공로로 부여받은 아비의 영원한 쉼터를 둘러보기 위한 아들의 속 깊은 효심이었다. 아비를 위한 자식의 깊은 속내를 헤아리니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국립묘지 경내는 사방 팔달로 아름답고 질서 정연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장군, 장교, 사병, 일반인으로 구획된 묘역 앞에 서니 참배하는 자로 하여금 국가유공자에 대한 경의와 감사를 표하게 했다.

노도와 같이 적진을 향해 돌진하던 그날이 생각나 국립묘지를 찾았지만 천지를 진동하던 포성도, 젊은 용사들의 함성도 들리지 않았다고 노래한 어느 시인이 떠올랐다.

나는 이름 없는 한 무명용사의 묘비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 배려하며 기원했다.

"무궁화 무궁화꽃,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위에 민족의 얼이 되어 곱게곱게 피어나 영원 무궁토록 이 나라 이민족의 수호신이 되옵소서" 회향 길에 오르며 공허와 비애를 털어버리려 석양 노을진 서녘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덧 노안에는 뿌연 안개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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