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겨울나무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1.12.12 2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온몸으로 찬바람을 안는 겨울나무를 본다. 침묵하던 나목들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려는 듯 윙~하며 생명의 소리를 낸다. 겨울 나목에 매달리는 찬바람이 옷깃만 여미게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마저 여미게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떨어져 나간 나뭇잎들처럼 시간에 떼밀려 정신없이 보낸 날들,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앞날의 희망들이 교차된다. 생각의 가지에 매달리는 일면들을 되짚어 성숙시켜본다.

해마다 새로운 계획이나 각오보다는 한 해를 그냥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했다. 직장에 충실하며 아이들과 집사람이 그 자리에서 제 할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생활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야지 하고 노력해 보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렇다고 가정을 희생시키는 일 중독자는 원치 않는다. 직장 동료나 상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신경 쓰지 않고 다만 균형 있게 일을 하고 양심적으로 적기에 업무를 처리하여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반복적인 업무, 그날이 그날처럼 무미건조한 틀에 박힌 지루함에서 탈피하려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행동하기가 정말 어렵다. 주말과 휴일엔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보내려 애써보지만, 애·경사와 각종 모임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늘 반복되는 일상의 날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세상을 잘못 사는 것일 게다. 때로는 좀 더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애써보지만, 일상의 날들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날마다 치열한 삶 앞에서 나 자신 피해 가기에 급급한 날들이고 보면 나 자신 결단력 없는 사람이 틀림없다.

앞으로 상황이 어렵고 삶이 무거울 때, 짊어진 고통도 기꺼이 보이면서 살아가고 싶다. 쓸쓸함과 힘겨움을 말하기 전에 먼저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새로 가슴을 데우고 새로 눈물을 만들고 새로 사랑을 배워서 내 남은 생을 따듯한 기운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새해의 소망으로 삼아야겠다.

아이들에게는 위엄과 권위를 내세우기 전에 다정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로, 아내에게는 겸연쩍어하지 못했던 사랑해란 말을 자주 건네는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남편으로, 부모님께는 듬직하고 살가운 아들로, 직장에선 믿음직하고 신임 받는 선후배로서 믿고 의지하고 나누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새날을 채워 가는 겨울나무

빈 가지에 바람만 가득 걸렸다

가슴에 안았던 소망 앗아간 바람

기다림으로 걸어 두고

여백의 미를 안으로 다스린다

버림으로써 초연해지는 너

땅속의 별이 되고 싶은 인생

당당한 알몸 되기 위해

난 무엇을 떨쳐야 한단 말인가

채워서 비워지는 게 아니라

비워지는 걸 다시 채우려는

나의 욕심을 거두고 나면

내 생의 뒤안길에 시간만 둘 수 있을까

모두를 버리고서야 모든 걸 얻은 듯

마냥 자유로운 너.

겨울나무처럼 마음을 비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도 당당하게 자신을 가꾸어 가는 나목을 닮으려는 바람을 졸시로 표현해 보았다. 겨울은 인생여정을 돌아보고 앞날을 기다리게 하는 계절인가 보다. 나에게도 겨울은 봄을 맞이하기 위한 인고의 기간이리라. 저 겨울나무들처럼 빈 가지로 서서 찬바람의 매를 맞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