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세상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1.12.0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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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서울을 다녀오는 길에서는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전용도로를 이용하는 고속버스가 빠르기도 하거니와 승용차로 올라가서는 주차공간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거기에 동서남북을 모르는 촌놈이 쫓아가는 서울에서는 약속장소를 찾아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찾아가는 것이 그나마 수월하다. 자연스레 버릇처럼 이용하면서 익숙해진 고속버스가 편하기도 하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것은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10분에서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가끔은 1시간이나 기다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서울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마치고 쫓아가는 정류장에서 승차권을 구입했더니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적잖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대합실에 주저앉을 의자가 없다. 광장에도 고속버스를 기다리며 주저앉은 사람들이 제법이나 많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고속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떠들썩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휘둘러보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손바닥에 잡아든 모금함을 내밀고 있었다. 그 소녀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타박하는 소리가 제법이나 요란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말없이 모금함을 내미는 소녀의 얼굴에는 제법이나 두툼한 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하필이면 얼굴을 숨기고서 모금함을 내미는 소녀가 마땅찮다고 쳐다보며 타박하는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나 또한 마스크를 하고서 모금함을 잡아든 소녀가 수상쩍었다. 좋은 일을 한다면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타박에도 여전히 모금함을 내밀면서 기웃거리는 소녀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이 슬그머니 소녀가 다가와 모금함을 내밀었다. 소녀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조금이라도 도와달라는 소녀의 눈망울을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잡히는 동전을 모금함에 넣었다.

소녀는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인사를 건네며 돌아섰다. 옆자리에 주저앉은 할머니에게 모금함을 내미는 소녀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불쌍하다는 한숨을 몰아쉬는 할머니가 천원권의 지폐를 모금함에 넣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금함을 내려놓는 소녀가 고맙다는 인사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고맙다는 인사가 수화였다. 농아의 소녀는 말을 못한다는 뜻으로 마스크를 하였던 모양이었다. 가슴에 농아라고 매달린 명찰이 또한 손바닥에 잡아든 모금함에 가려졌던 것이다.

수화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농아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슬그머니 돌아섰다. 농아에게 멀쩡하게 생긴 소녀라고 타박했던 자신들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나 또한 괜스런 오해를 후회하며 지폐 하나를 모금함에 잡아넣었다. 머쓱하게 쳐다보는 소녀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버스정류장으로 도망치듯이 들어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 모금함을 내밀던 농아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안타까운 한숨을 몰아쉬며 괜스런 오해를 하였다고 때늦은 후회를 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쩌다가 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세상이 되었는지, 한숨이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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