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참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 홍성학 <주성대학 교수>
  • 승인 2011.12.0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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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홍성학 <주성대학 교수>

잘 알려져 있는 우화 중에 ≪토끼와 거북이≫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하던 중 앞서 가던 토끼가 잠을 자는 바람에 예상을 뒤엎고 절대 불리한 거북이가 역전하여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토끼처럼 자만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의 소중함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즉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쟁을 했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달리기를 잘하는 토끼가 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도록 한 것부터가 잘못이고, 달리기 시합에 응한 거북이도 잘못이 있다.

토끼가 거북이보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한 번의 달리기 시합에서 거북이가 이겼다고 해서 거북이가 토끼보다 달리기를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달리기 시합에서 거북이가 자만에 빠진 토끼에게 이겼다고 해서 거북이가 달리기 선수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 달리기 시합으로 인해 서로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토끼는 토끼로서, 거북이는 거북이로서 각자의 존재가치를 살려가는 데 시간을 사용하지 못하고 단지 경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이러한 경쟁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는 서로의 존재가치를 살려가도록 협력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이기주의이고 이타주의이다. 참된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와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경쟁에 관심을 두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것을 이기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오히려 자신에게 해(害)가 되는 '해기주의(害己主義)'가 된다. 그리고 타인의 존재가치 계발을 방해하는 '해타주의(害他主義)'가 된다. 경쟁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경쟁에서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 '보람된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전국적으로 수능시험이 치러지고, 수능시험 직후 자살하는 학생이 나타나곤 한다. 올해는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몇 달째 숨겨온 학생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진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이 되어버렸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학생들 간에 경쟁을 하게 하고 서열을 매기는 것이 중심이 되어버렸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위주 교육이 '잘못된 이기주의'를 심어주고 있다. 자신과 타인의 가치계발을 저해하는 '해기주의와 해타주의'가 됨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경쟁을 넘어서'의 저자 알피 콘(Alfie Kohn)은 "구조적 협력은 우리가 흔히 쓰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라는 이분법(二分法)을 거부한다. 구조적 협력은 상대방을 도움으로써 동시에 나 스스로를 돕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비록 당초에는 나의 동기가 이기적인 것이었을지라도 이제는 우리의 운명은 서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협력을 통한 참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연결을 제시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존재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은 모두 소중하다. 존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각자의 존재가치를 다듬어가도록 구조적 협력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보람된 삶에 활력을 주는 생명력이 있는 사회이다. 참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연결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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