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의 선택
솔개의 선택
  • 김송순 <동화작가>
  • 승인 2011.11.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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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어제는 벼르고 별러 병원을 갔다. 오래전부터 여기저기 아픈 게 예사롭지 않아 시간을 낸 것이다. 역시 병원은 예상했던 대로 복잡했다.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기다리고…….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제일 먼저 살을 빼라는 주문부터 했다. 그리고 꾸준히 운동을 하란다.

약을 한보따리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추수가 모두 끝난 가을 들녘에 부는 바람처럼 내 가슴속을 휘돌며 지나가는 바람은 차갑기만 했다.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자고 싶을 때 실컷 잤으며, 움직이기 싫어하는 습관을 꼭꼭 껴안고 살아온 보람으로 얻은 약보따리인 게 분명했다. 이대로 그냥 산다면 내 60대의 하늘은 그리 맑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제 나는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아침부터 심란한 생각에 창가를 서성이는데, 가장 장수하는 새로 알려진 솔개가 70세까지 살기 위해 40세쯤에 갖게 된다는 그 선택이 생각났다.

솔개는 먼저 산 정상 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거기에 둥지를 짓고 머물면서 맨 먼저 길게 자라고 구부러진 오래된 부리로 바위를 쪼아 빠지게 한단다. 그런 다음 새로 돋은 부리로 노화된 발톱을 뽑아내고, 발톱이 새로 돋아나면 두꺼워진 깃털을 모두 뽑아낸단다. 가벼운 깃털을 새로 얻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고행의 시간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솔개는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된다는데, 난 30년을 더 살고 있을 솔개의 젊어진 모습보다는 고행의 마지막 단계에 깃털을 하나씩 뽑으면서 솔개가 가졌을 설렘을 생각하고 싶다.

솔개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기대에 얼마나 가슴 설레었을까?

가벼워진 날개를 맘껏 펄럭이며 솔개가 맨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어디였을까?

문득 내 안에 있는 날개를 만져본다.

내 날개도 이제 깃털이 너무 두꺼워져 있다. 그래서 날아오르지 못하고 연신 날개만 파닥였나보다.

2040년대는 평균 수명이 90까지 올라갈 수 있다지만 난 그 많은 숫자의 무리에 합류하는 것보다는 내 의지대로 살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것이 더 행복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솔개처럼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때가 온 것이다.

무뎌지는 감성을 위해 세상을 더욱 멀리까지 바라볼 것이며, 마음속에 쌓여가는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하늘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용기도 갖고 도전해 볼 생각이다. 또한 움직이기 싫어하는 습관도 과감히 날려버리며 산책 중에 새로운 영감을 얻는 지혜도 터득해 볼 생각이다.

그렇게 솔개처럼 부리를 뽑고 발톱을 뽑는 고통을 감수할 때 난 비로소 세상을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꿈도 꿀 수 있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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