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와 상처
옹이와 상처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1.11.2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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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아침 일찍 수정산에 오른다. 수정산엔 등산로가 3곳이 있다. 유독 내가 좋아하는 코스가 있으니 곧 소나무가 많이 나 있는 코스다. 좀 가파르긴 해도 소나무에서 풍기는 향기가 좋고 두껍게 쌓인 솔잎의 폭신폭신한 감촉이 좋아서이다.

소나무. 소나무는 상록수의 대표적인 나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의 잎이 모두 시들고 떨어진 추운 겨울이 되면 소나무는 상록의 푸른빛이 오히려 되살아난다. 그래서 소나무를 일컬어 초목의 군자(君子)라고 하며, 군자의 절개, 송죽(松竹)의 절개, 송백(松栢)의 절개를 지녔으니 내가 더욱 좋아하는 나무이다.

소나무엔 여느 나무보다도 옹이가 많다. 옹이란 나무가 꺾이든가 잘려나간 자리에 생긴 상처자국이다. 다친 자리가 아물면서 단단하게 뭉쳐진 굳은 곳인데 야무지기가 대단하다. 옹이가 생기기 전에 진물이 난다. 마치 아픔을 겪으면서 흐르는 눈물 같은 것으로 송진이라고도 부르는 것이 굳혀진 관솔이다. 침엽수지(針葉樹脂). 송진은 침엽수에서 분비되는 진이다. 우리 몸의 굳은살, 가골, 애벌뼈와도 같다.

또 나무 중에도 옹이는 꼭 침엽수에만 생긴다. 참나무 오리나무 자작나무 밤나무 어느 활엽수를 아무리 살펴봐도 옹이는 찾아볼 수 없다. 침엽수는 거의 상록수다. 사시사철 푸를 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잎이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런 기질을 상징으로 예부터 상록수를 일컬어 초목의 군자라고 칭했을 정도다. 곧고 무른 연재로 구조용재 등으로 사용되는데 잎이 바늘처럼 가늘게 생긴 수목이라서 까시러진 성격을 연상케도 한다.

내 몸에는 유난히 상처가 많다. 생각해 보면 내가 꽤나 사막스럽게 굴었나보다. 손가락 발가락부터 발목, 팔, 정강이, 갈비뼈, 어깨 쇠골, 목, 치아, 관자놀이 광대뼈 등 수많은 곳이 부러지고 찢어졌다. 지금은 많이 아물어 희미하지만 숨길 수 없는 개구쟁이 적 과거의 흔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활엽수인 참나무 박달나무 밤나무 등이 단단하기로 유명하지만 상처자국이 남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건축재료 등으로도 쓰이지 않는다. 살아 있을 때는 야무지고 단단하지만 일단 베어지고나면 그 강인함의 기력이 곧 쇠진해 버린다는 뜻일 것이다.

활엽수는 성질이 급하다. 화려했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고엽이 되어 낙엽이 되는 과정 같다. 불이 쉽게 붙고 한번 붙으면 타타닥하고 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쉽게 불을 놓을 수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요란하기만 하다. 처음에 불붙일 때 필요하다.

침엽수는 휘발성분이 많아서 불길이 맹렬하게 오르지만 오래 가지는 않는다. 하여, 불 놓기 좋은 활엽수로 불을 붙이고, 다음에 불기운을 세게 하기 위하여 침엽수를 넣는 것이다. 그러면 불이 크게 타오르고 소리도 기운 세게 난다. 나무에 있는 휘발성분으로 인함이다.

내 기질이 영락없는 침엽수다. 처음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다. 내성적 성격 때문일 테지만 잘 다치고 부러져 생긴 상처만 봐도 천생 소나무의 옹이 같다. 곧고 무르지만 연재나 구조용재 등으로 사용되는 나무라면 나무랄 일 아니다. 잎이 바늘처럼 가늘게 생겨 까시러진 성격을 연상할지라도 마다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늘 아침 등산길은 힘겨웠다. 길도 아닌 소나무밭을 따라가다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 헤매다 왔다. 긁히고 베어진 상처를 보며 다시금 소나무의 옹이를 생각해 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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