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일의 기억들
수능 시험일의 기억들
  • 김명철 <충청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1.11.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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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수년간 고3 담임을 하면서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나는 고3 담임선생 노릇을 좀 유별나게 하는 편이었다. '학급실명제'로 모든 것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생활하도록 한 점이다. '짝꿍 실명제'는 한번 정해진 짝꿍은 졸업할 때까지 변하지 않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함께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생활하도록 했다. 12년간의 학창시절 마지막 고3, 결혼해서 진짜 짝을 만날 때까지는 마지막 학창 시절 짝꿍이 되는 셈이었다. 졸업 후 세월이 흘러도 제자 한 사람을 만나면 다른 짝꿍 제자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좋다. 그리고 점수 실명제를 통해 성적을 향상시키고, 청소실명제로 학급과 학교에 대한 청결과 봉사의 정신 함양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생활하도록 하여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도 서로를 향한 기억과 추억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특별히 올해는 수능일에 대한 추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수능일! 나는 고3 담임으로서 아침 일찍 수능 시험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서 시험장으로 입장하는 제자들을 힘껏 안아주고 격려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입장하는 대표 선수들처럼 그렇게 고3들은 수능 시험을 보러 간다. 학생들을 모두 입장시킨 후 나는 기도하러 간다. 내가 가르친 모든 제자들이 시험을 무사히 잘 보도록, 그리고 이번 수능시험이 무사히, 원만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혹시 실망한 수험생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이 없도록,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기도한다. 시간에 맞추어 1교시는 1교시에 맞게, 2교시는 2교시 시험에 맞게 그렇게 기도하며 하루를 보낸다.

점심 시간이 되면 나는 바빠진다. 시험장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면 더욱 바쁘다. 왜냐하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은 시험장을 개방하기 때문에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시험장인 학교로 찾아가서 혹시나 오전에 무슨 일이 없었는지, 시험은 실수하지 않았는지 등을 살펴보러 간다. 점심을 먹다가 내가 나타나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모른다.

어떤 녀석은, 밀려서 썼다느니, 어려웠다느니 하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든다. 그러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힘내서 오후에도 잘 보도록 말한 후에 다른 시험장 학교로 달려간다. 그곳에서도 제자들을 만나 격려하고, 힘을 주고 다시 돌아와서 오후 시험 시간에 맞게 또 기도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이 3교시 영어 시험을 봅니다. 공부한 내용이 모두 기억나게 하시고, 실수하지 않게 하옵소서!", "시험의 모든 과정들이 원만하게 잘 진행되도록 하옵소서!"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낸 후 시험을 마칠 시간이 가까워지면 다시 학교로 달려가서 멋지게 시험을 치르고 교문으로 나오는 제자들을 가슴 가득 안아 본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수고했다. 자랑스럽다. 내 아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지난 1년간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지고, 제자들의 앞길이 형통의 복이 가득하길 기도했던 기억이 새롭다.

올해 나는 고3 학부모로 수능을 치렀다. 이 땅의 모든 수험생과 특별히 고3 선생님들의 수고와 노력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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