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암 생태 공원이 있는 마을
문암 생태 공원이 있는 마을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1.11.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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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평화로운 우리 동네 가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넓은 마당에는 콩 타작이 한창입니다. 도리깨가 윙윙 창공을 번개처럼 휘날리며 휘파람을 붑니다. 국화 꽃 향이 그윽한 시골 골목길은 평화롭지만 일손이 바쁜 노인들의 굽은 허리를 펴 볼 사이가 없답니다.

김장 배추를 절이는 집에는 이웃이 모여서 김치 소를 버무리느라 웃음꽃이 골목길로 새어 나옵니다. 그냥 지날 수 없어 고개를 길게 빼고 담 너머로 넘겨다 보니 어서 오라고 부릅니다. 양념 냄새가 앞마당 가득 합니다. 돼지고기를 삶아서 이웃들과 잔치를 합니다. 형제가 많은 부잣집 김치 담그는 날 풍경은 풍성합니다. 총각김치, 갓김치, 동치미, 파김치, 보쌈김치, 배추김치를 담가서 첫째 둘째 셋째, 딸 이름표를 붙여서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 힘든 줄도 모르고 나누어 줄 주인 마나님의 즐거운 표정이 부처님 같아 보입니다.

들깨를 마당에 널어놓은 집도 있습니다. 고추 다듬는 부부의 모습도 보이네요. 경운기 가득 무와 배추를 싣고 털털거리며 시장으로 팔러가는 농부는 울상을 지으며 배춧값이 헐값이라고 울먹입니다.

택배차가 골목에 와 있습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딸들에게 쌀이며 마늘 김장김치도 모자라서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짜서 박스며 자루에 담아 꼬리표를 붙입니다. 주소록을 들고 왁자지껄 주소를 불러주는 노부부의 사랑 노래 소리가 아들딸들 귀에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피와 땀의 결정체입니다.

핸드폰의 편리함과 택배 문화가 생기고 우체국까지 가야 했던 수고로움을 덜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바리바리 힘겨운 줄 모르고 등짐으로 져다 택배 붙이러 다니던 몇 년 전 고생담 이야기가 골목길을 누빕니다. 주소를 들고 서울 가서 무거운 보따리 들고 아들 집 찾느라 진땀 뺀 이야기부터 주차장에서 집 보따리 잃어버릴까 봐 오도가도 못하고 아들 오기를 해가 지도록 기다렸다는 분도 계시고 참으로 지나온 역사가 눈물 나게 정겹습니다.

메주를 쑤어서 짚으로 엮어 파리 때문에 양파 망을 모아 두었다가 담아 대롱대롱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집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감을 까서 곳 감 만들려고 실에 대롱대롱 마치 풍경처럼 매달아 놓은 집도 있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 종소리가 날 것처럼 신선해 보입니다. 고추장을 담그는 집도 있네요. 신식 고추장이라며 각종 효소를 담아 두었다가 고춧가루와 메줏가루 고추장용 된장을 사다가 효소만 넣고 소금 간을 하면 즉석에서 맛나게 먹을 수 있는 고추장을 만든답니다.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 보니 매우면서도 달콤한 고추장 맛입니다. 할머니는 올해는 고춧금이 금값이라고 합니다.

어떤 집은 부모님 생신을 맞으면 경로당에 출장 뷔페를 시켜 한바탕 잔치를 엽니다.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그런 날은 마을 축제나 다름없답니다.

시에서 지원해 주는 난방비와 운영비로 어르신들은 따뜻한 겨울나기를 올해도 포근하게 할 것 같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찾아가는 경로당 프로로 노후를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나 즐겁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좋은 강의를 들려 드리면 더없이 만족할 것 같습니다.

경로당에 서리태 콩이 다문다문 섞인 밥을 지어 집집마다 담가 온 김치로 상을 차리고 저녁밥을 지을 시간입니다.

철새들이 창공을 가르며 끼룩거리고 붉게 타는 저녁노을이 겁나게 아름다운 문암 생태 공원 풍경은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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