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급행열차를 탔나
무엇 때문에 급행열차를 탔나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1.11.0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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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천년 고도 청주의 중앙공원에 노란 잎이 무성한 압각수가 은행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갈무리하고 있는 압각수 은행나무 아래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장기와 바둑을 두는 노인, 윷놀이를 하는 노인, 막걸리를 마시는 노인 등 다양한 군상(群像)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노인 부양의 책임을 가족과 자녀, 특히 장남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노인은 가족과 함께 동거하는 것을 전통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변동으로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되면서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또한, 의학의 발달과 보건위생의 개선 등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노인문제의 해결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예를 다하여 어른을 공경하는 바탕 위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인의 요구에 기초한 복지정책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무임승차의 혜택을 주고 기초노령 연금을 지급하며 100세가 되는 노인들에게 명아주로 만든 전통 지팡이인 청려장(靑藜杖)을 증정하는 등 노인복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에도 정작 노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빈곤, 질병, 고독이란다.

노인들은 자신의 빈곤과 건강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며 여가선용을 통한 외로움을 달래길 원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공원을 찾는 노인들도 대부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말벗을 찾기 위해 온다고 한다. 사회 각계 봉사단체나 개인이 펼치고 있는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무료이발을 하기 위하여 오기도 한단다. 가장 오래 살고 가장 늦게 잎이 지는 은행나무 아래서 소일하는 노인의 모습이 가을바람처럼 차갑게 가슴에 닿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관점과 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라 하고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고 하여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 하였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노인들이 중앙공원에서 초로인생(草露人生)을 달래고 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내 삶을 반추해 본다.

바람에 휘감겨 스쳐 가는 시간

조급한 마음 더욱 조여 대거늘

살갑게 내리는 봄 햇살

느끼지도 못한 채

낙엽처럼 바스락대는 사람아

세월에 채찍 가하지 마라

마음에 남아 있는 여유조차

앗아가려 하거늘

황소걸음 걸어보자

바람의 소리 들어 보자

목적지에 다다르면 밤인 것을

무엇 때문에 급행열차를 탔나.

나를 돌아 본 짧은 생각을 ‘무엇 때문에 급행열차를 탔나’라고 시로 표현해 보았다. 급류처럼 흐르는 인생의 여울목에서 바라본 중앙공원 노인들의 모습이 먼 훗날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그나마 중앙공원이 노인들의 외로움과 무료함을 달래는 공간이 되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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