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군걱정
만추의 군걱정
  • 문종극 <편집국장>
  • 승인 2011.11.0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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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무더위를 밀어냈나 싶었는데 만추(晩秋)다. 슬금슬금 다가온 가을이 어느 결에 깊어진 것이다. 지난 주말도 오색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속리산, 월악산, 계룡산, 칠갑산 등 충청지역 유명산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심 주변의 작은 산도, 단풍나무 가로수가 길게 늘어선 도로가에도 온통 단풍인파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아니라도 노오란 잎이 한 잎 한 잎 떨어지고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서 있는 집 밖 둔덕에도 지나는 장삼이사(張三李四)·필부필부(匹夫匹婦)·선남선녀(善男善女)·갑남을녀(甲男乙女)들이 물든 매혹스러움에 취해 만추지정(晩秋之情)에 빠지고 만다. 옆에서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도 시인 같다. 뭔가 한마디를 하는 모양새가 시구다. "우아 너무 아름답다. 예쁘다. 낙엽이 지는구나. 한 잎을 책갈피에 넣고 싶어" 등등. 미완의 시임에 틀림없다.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와 용화면 조동리를 잇는 도마령(刀馬岺·해발 840m)이 요즘 오색 단풍이 절정에 달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남으로 각호산과 민주지산, 북으로 삼봉산과 천만산 등 첩첩산중을 배경으로 24굽이 산길이 뻗어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단다. 이 정취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단다.

옥천군 안내면 현리 국도 37호 구간에는 30~40년 된 은행나무 600여 그루가 노란색을 띠며 푸르른 대청호와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고 한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이 도로에 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들은 그 자체로 애잔한 정취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뿐인가 충남 아산 현충사 초입은 이미 은행나무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다. 1973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가로수 조성 지시로 350여 그루가 왕복 2차로변에 심긴 현충사 진입로. 이곳 1.6km는 은행나무길로 불린다. 40여 년이 지나면서 아름드리로 자란 은행나무들이 양쪽에서 서로 가지가 맞닿아 터널을 이루면서 물든 단풍이 장관을 이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찾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는 곳이다.

어딜 가든 형형색색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그것도 깊은 가을은 사람들의 혼을 뺀다. 그래서 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곳곳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색단풍 중 특히 노오란 은행나무 잎 단풍은 바라보는 이를 고독에 빠트리기 십상이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감정이 슬픔으로 이어진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은행 낙엽을 보면서 다 떨어지면 쓸쓸하겠지떨어지는 잎들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나무와 작별하겠지'. 사색에 빠진다. 그러다 보면 고독해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 때문인 듯하다. 겨울을 맞아야 한다는 낙엽이라는 자체가 가진 마지막이라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한 해를 속절없이 보낸 아쉬움으로 바라보는 50대 이후 기성세대들은 그래서 우울해지고, 젊은 세대들은 낙엽을 바라보며 멋스러움으로 사색을 즐기고 고독을 씹다가 우울해진다. 만추가 주는 정서다.

만추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보고 느끼고 즐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깊은 고독으로 우울증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일수록 잠을 편하게 못 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의 시카고대 리엔 쿠리나 교수는 노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독과 수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잠을 편하게 못 자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낙엽은 사색을, 잦은 사색은 고독을, 깊은 고독은 우울증을 부른다. 만산홍엽이 그렇게 이끌기 십상이다. 보이는 그대로를 즐기자. 감탄의 계절을 무심히 보내기가 아쉬워 군걱정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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