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역사의 주인공이 되다
청소년 역사의 주인공이 되다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1.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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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저녁에 볼일이 있어 대형마트에 들렀다. 저녁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직원들은 물건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눈에 잘 띄는 곳에 플래카드를 걸고 초콜릿 상자를 쌓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빼빼로 데이가 며칠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 상대로 한 상술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하루 판매액이 일 년 매출의 절반을 넘는다 하니 청소년들에게는 의미 있는 날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족보도 없는 날을 고유의 명절보다 더 챙기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고 혀를 차는 어른들도 있지만, 과거 촛불집회와 같은 시국 사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개념 있는 청소년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자기 의견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알며 호불호를 명확하게 하는 모습은 버릇없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요즘 청소년의 문화의 특징은 상품에 대한 적극적인 소비자인 동시에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다. 충동구매에 강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이미지를 소비하는 어엿한 소비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다모폐인이라는 말처럼 좋아하는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집단화하는 열성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일부 아이돌 가수를 구심점으로 생긴 팬덤(Fandom) 현상은 조직적이며 구조화되어 있다. 수만 명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때론 모금을 통해 광고를 내는 등 유기적이며 활동적인 모습은 어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또한, 성향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동호회나 카페를 만들어 활발한 의견을 개진하며,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높은 감성을 가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들은 네트워크에 강해 그를 통한 인간관계 형성에 자유롭고 자기들만의 세계 속에 몰입하며 기존질서인 권위와 고정관념에 대해 통렬한 비판도 마다치 않는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입시경쟁 속에 내몰려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고 사는 우울한 모습 또한 양면성으로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원 폭력과 인터넷 중독 같은 사건이 지면을 장식해 마치 청소년은 어른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 미성숙한 인간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인권을 이야기하고 권익을 이야기하면 어른들의 사주를 받은 철없는 사람으로 매도당하고, 사회적 문제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출하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낭비하는 것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부여된 기존 질서나 체제에 잘 순응하는 인간을 길러 내기에 바쁜 것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명문대를 진학하기 위해선 옆에 앉아 있는 친구조차 경쟁자이며 적으로 규정하는 각박한 현실은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굴레다.

오늘은 1929년 11월 3일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정부에서 제정한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다. 통학기차 안에서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과의 마찰이 확대되어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는 민족운동으로 전개되었고, 이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도 청소년의 역할이 컸다.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하다 실종된 김주열 학생의 처참한 주검은 마산시민을 분노케 했고, 결국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6·25전쟁 당시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조국을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학도병들 또한 국가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한 청소년의 모습이다.

이처럼 청소년은 다양성이 압축된 모습을 갖고 있다. 변혁의 주역으로 때론 사회적 근심거리로, 이들이 당찬 기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청소년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현재를 사는 그 자체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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