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포기 전략인가
총선포기 전략인가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10.3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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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국의 유권자들은 견제와 균형의 달인으로 꼽힌다. 권력의 독주와 집중을 묵과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응징은 대부분의 경우 예고도 전조도 없이 가차없이 수행된다. 여론조사 결과를 믿고 방심했다가 큰코 다친 세력이나 정치인이 부지기수다. 정치하는 쪽에선 유권자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푸념도 터져나오지만, 오만을 응징하는 타이밍은 절묘할 정도다.  

1990년 3당 담합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218석을 자랑하며 불침의 항공모함을 방불하는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2년후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민자당은 반에도 못 미치는 14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인위적 정계개편을 통해 장기적 정권 유지를 꿈꾼 착각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편향된 정국의 추를 균형점에 맞춘 지혜로운 선택이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152석을 얻으며 의석 과반을 장악했다. 그러나 행정과 입법권력을 동시에 장악한 막강 여당을 유권자들은 오래 두고 보지 않았다. 통합민주당으로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18대 총선에서 바로 81석으로 내려앉았다.

2006년부터 지방선거, 총선, 대선에서 내리 3연승하며 지방의 말단권력까지 장악한 한나라당은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부자 동네인 강남 3구의 몰표로 서울시장만 가까스로 건졌을 뿐 세종시 수정논란으로 역풍이 몰아친 충청은 물론 강원과 경남의 텃밭까지 야당에 빼앗겼다. 서울시 구청장의 경우 2006년 선거에서 25석 전석을 석권했지만, 지난해 선거에서는 강남 부자타운을 비롯해 4곳만 건지고 21곳을 빼앗겼다. 역전도 이런 역전이 없다. 50%를 넘나드는 대통령 지지율과 상대적으로 높은 정당 지지율에 안도하며 설마했던 한나라당은 처참한 결과에 경악했다. 대부분의 전문가와 정치인들은 여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심리가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지선에 이은 재보선에서도 낙제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연패하며 당내에는 내년 총선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 여당 내에서는 유권자의 견제심리를 감안한 이런 분석도 나오는 모양이다.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참패할 경우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해 권력의 균형을 맞춰 줄 것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아주 화끈하게 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우스갯소리로 들었지만 요즘 청와대의 행보를 보면 이 같은 전략이 실제로 실행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처장에 어청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을, 국립환경과학원장에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를 임명했다. 어 이사장은 경찰총장 시절 촛불시위로부터 청와대를 보호한다며 광화문에 컨테이너로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았던 인물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에 임명될 때도 보은인사 논란과 함께 말이 많았다. 박 교수는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을 적극 지지해 온 대표적 환경학자로 ‘4대강 전도사’로 통한다. 누가 봐도 보은성 인사로 여권 내에서도 기가 차다는 반응이 나온다. 더욱이 서울시장 선거 패배 후 “재보선 결과에 담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한 지 1주일도 안 돼서 단행한 인사다.

총선을 앞두고도 대통령이 민심과 담을 쌓고 ‘마이 웨이’를 열창하는 현상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내년 총선은 안중에도 없거나 지기로 작정한 자세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선을 내줘 유권자의 견제심리를 자극하고 대선을 챙기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황당한 추측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선거 패턴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경고가 먹혀들지 않으면 더 강도 높은 응징을 준비하는 것이 유권자들이다. 여당이 서울시에서 뼈아픈 연타를 맞은 것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받아든 ‘옐로우 카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임했기 때문이다. ‘옐로우 카드’가 거듭돼도 효력이 없으면 유권자들은 ‘레드 카드’를 꺼내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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