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계발과 공정한 사회
가치계발과 공정한 사회
  • 홍성학 <주성대학 교수>
  • 승인 2011.10.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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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미국 대법원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판례가 전해 온다.

“모든 사람은 차별받아야 한다. 일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공부 잘하는 사람이 더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일도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공부도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 흑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백인이 될 수 없고,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없으며, 노인은 젊은이가 될 수 없다. 미국 헌법은 이런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라고 되어 있다. 제11조에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헌법 정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가치계발(價値啓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존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존재가치를 쓸모 있게 가꾸어 내는 것이 가치계발이고, 이러한 가치계발이 잘 되어 가도록 하는 사회가 가치계발의 사회이다. 존재가 존재답게 존재할 수 있게 하여 존재의 생명력을 키워주는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가치계발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존재에는 나름의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 일상 속에서 ‘가치 있는 사람, 가치 있는 물건’, ‘가치 없는 사람, 가치 없는 물건’이라고 나누기도 하는데, 이처럼 존재가 가지고 있는 존재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존재를 폄하하는 것이다.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는 깨달음은 존재에 대한 존엄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존재가치에 대한 생명평화적 지향가치(志向價値) 판단과 연계되어야 한다. 존재가치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고 그 존재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지향가치이므로 이 지향가치의 성격에 따라 존재가치의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든 칼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칼의 존재가치는 ‘자르는 데 있는 것’이고, 그 존재가치를 생명평화적 사회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생명을 없애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생명평화적 지향가치에 결부시켜 다듬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존재가치를 생명평화적 지향가치에 결부시켜 다듬어가는 사회가 가치계발의 사회인 것이다.

또한 존재가치에 대한 서열성을 타파해야 한다. 존재가치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고 서열이 없는데, 사람들이 획일적인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존재의 서열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성적 순으로 학생의 존재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흑인과 백인, 여자와 남자 등에 따라 서열을 매기는 경우도 그렇다.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판단을 지양하고, 다양성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가치계발이 잘 이루어지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이다. 공정한 사회는 존재가치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 다양한 존재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이고, 가치계발에 대한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이다. 학연, 지연, 연령, 성별, 경제력 등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차별로 인해 분노하지 않게 하는 사회이다. 그래서 공정한 사회를 절실히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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