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8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8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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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이 많아 잃을 것을 걱정한 비운의 폭군
진시황릉을 지나 동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으로 향했다. 넓은 광장을 들어서자 체육관을 연상시키는 지붕이 흰 돔으로 조성된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났다.

제일 큰 1호 갱(一號坑)이다. 1호 갱은 1974년 샨시성 린퉁현(臨潼縣.임동현)에 사는 양배언이라는 농부가 관개용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땅속에 묻힌 토용(土俑)을 발견하고 현에 보고하여 발굴하게 되었다 한다.

1호 갱을 들어서자 2000년을 잠들었던 장대한 규모의 토용(土俑)들이 살아 숨쉬는 듯한 모습으로 열병해 있다. 당시의 질서 정연한 병사들의 모습과 생생한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이 생동감이 있다.

진시황을 호위하는 지하군단 병사로서가 아니라 흙 속에 묻혀 잠들어 있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열병을 한 채 당당하게 서 있다. 병마의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이나 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할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죽어서도 황제의 안위와 권위를 지킬 수 있도록 저 많은 병마를 제작하여 묻어두었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을 뿐이다.

변방의 외적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고 사후에 침입할 그 무엇이 두려워 죽어서도 호위를 받아야 할까. 천하를 한 손에 잡을 수 있었기에 쟁취한 것을 잃지않기 위해 막아야 할 것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황제였을 것이다. 병마용 하나하나에 묻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의 노고를 경외감으로 바라보았다.

병마용은 지표에서 4.5m 깊이의 땅 밑에 세로로 10개의 갱이 줄지어 서 있다. 각각의 갱마다 전위(前衛)에서 후위(後衛)까지 10열로 늘어서 있다. 전차대(戰車隊)와 포대(砲隊), 그리고 쇠 노(弩)와 130여개의 화살을 가진 보병대를 배치하여 진시황 생전의 군단 모습을 그대로 재현시켜 놓고 있다. 사열에 임하는 근위병들의 표정은 근엄하고 행렬은 웅장하였다.

1호 갱의 넓이는 60m, 길이가 210m로 현재까지 8000개의 병마(兵馬)와 1만여 개의 무기가 출토되었다. 갑옷을 입고 칼을 손에 쥔 근위병들의 근엄한 표정을 보면 2000년 전의 진(秦)의 세계가 지상에 다시 부활한 느낌이 든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시황제는 시안에서 20km 서쪽에 위치한 함양(咸陽)에 도읍을 정하고 아방궁을 지었다. 또한 만리장성을 쌓아 외적을 막고 땅 밑에 궁전을 마련하여 사후에도 황제로서의 권위를 지키고 영화를 누리기 위해 근위군단을 주위에 배치하였다.

1978년 프랑스 시라크 전 총리는 병마용을 참관하고 나서 “세계적으로 전에는 7대 기적이 있었는데 진용 갱의 발견은 제 8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를 보지 않으면 이집트에 왔다고 할 수 없듯이 진용을 보지 않으면 중국에 왔었다고 말할 수 없다” 라고 전언부에 써 놓았다 한다. 그 이후 이 말은 널리 전해져 세계 8대 기적은 어느새 진의 병마용 갱을 일컫는 것이 되었다.

병마용 갱은 1호에서 3호 갱까지 있는데 1호 갱이 가장 크다. 사진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소개되었던 것은 대부분 1호 갱이다. 2호 갱은 전차출토 현장인데 망가진 것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꿇어앉아 활을 쏘는 병사와 장교 상, 장군상 등이 인상적이다. 2호 갱은 규모는 작지만 1호 갱보다 다양한 모습의 병마용이 있는데 보병과 기병, 전차 등의 3개 병종을 혼합한 부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섭씨 800∼900도의 온도에서 말의 각 부분을 진흙으로 붙여서 구워낸 테레코타 수법이 사용된 것이 진용 병마 갱이다. 갑옷도 입지 않고 서서 활을 쏘는 병사의 모습이 매우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현재도 진용 갱은 계속 발굴 중이라 한다.

제 3호 갱은 1호나 2호 갱 보다 더 깊게 묻혀져 있으며, 목이 없는 병용이 많다. 작은 규모에 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대로 추정된다. 다른 2개의 갱은 전투대열로 배치되어 있지만 이것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통로 양쪽에 정렬해 있는 모양이 아마 지휘기관을 보위하는 부대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4번째 전시실은 갑골문자 발굴과 연구에 탁월한 족적을 남긴 동작빈(董作賓) 선생의 연구업적 들을 전시해 놓았다. 아래층에는 색깔을 입힌 무릎 꿇은 병사 2명과 동 마차를 전시해 놓았다. 또한 머리 위에 우산 같은 차양을 받치고 4마리 말을 이끄는 병사와 하늘과 마차의 사방을 막고 작은 문으로 밖을 볼 수 있게 만든 4마리 말이 끄는 2호 갱 마차와 화살촉, 각종 장식품과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분서갱유나 아방궁의 건축, 만리장성의 축조 등으로 무고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폭군 진시황의 끝없는 욕망이 지하세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독재자의 과대망상적인 유적과 유물들이 세계적인 관광 상품으로 거듭 태어나 시안 시민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으니 역사적 진실과 가치가 무엇인지 착잡한 생각을 들게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깃발 부대 행렬과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기적이라고 찬탄하는 야누스적인 얼굴에서 모두가 한번쯤 진시황이 되어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무제(武帝, BC 140-87) 때 장건의 서역착공(西域鑿空)을 계기로 시작되어 후한 때 반초부자에 의한 서역경략에 이르기까지 단절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로 인해 비로소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동서 교통로가 뚫리게 되었다. 동방의 한(漢)문명권과 서방의 고전문명권 사이에 사상 처음으로 직접적인 내왕이 가능해졌다.

특히 한무제는 한혈마(汗血馬)를 얻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말의 존재는 전쟁에서의 승패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교역에도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한 무제는 서역정벌을 위해 힘 있고 빨리 달리는 대원(大苑)의 한혈마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한 무제는 이광리(李廣利)를 시켜 천금과 금마(金馬)를 주고 명마를 사오라고 시켰고, 말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오손(烏孫)의 천마(天馬), 대완(大宛)의 한혈마(汗血馬), 월지마 등은 사회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唐)대에 이르러 강대한 통일제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한대 이후 500년간 중단되었던 서역경락을 재개하여 페르시아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였다. 한편 아무다리아강까지 동진한 이슬람 군과 당의 군대가 중앙아시아에서 각축을 벌이게 되었다.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4차 서정(西征)으로 당에 다시 복속되었으나 751년 7월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파미르고원 서쪽 속령지는 거의 잃게 되었다.

이슬람군의 승리는 중앙아시아에서 불교의 이슬람화가 촉진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역경략(經略)으로 인하여 당의 비단과 도자기, 칠기, 금은세공 등이 서역에 다량 수출되었다. 또한 연단술(煉丹術)과 제지술(製紙術), 맥학(脈學) 등 과학기술이 서역으로 처음 전파되었으며, 회화도 소개되었다.

특히 고선지장군이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하여 제지술을 가진 포로가 된 중국인 병사들로 인해 중국 제지술이 이슬람세계에 도입(8∼9세기) 되었고, 다시 이슬람을 거쳐 12세기쯤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서역으로부터 각종 문물이 당에 대거 밀려왔다. 당시 중앙아시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소무구성(昭武九姓)의 소그디아나 상인들에 의해 모직물과 향료, 주옥(珠玉), 보석, 양마(良馬), 약재 등 서역 특산물이 교역되었다. 당 경략 하에 서역을 통해 불교, 특히 서역불교가 큰 폭으로 유입됨은 물론 새로이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 경교(景敎)와 마니교(摩尼敎), 배화교(拜火敎, 조로아스터교), 유태교 등 서방 종교가 동전(東傳)하였다.

이는 후일 이슬람교의 진입을 위한 길을 틔워 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서역과의 교역이나 인적 내왕을 통하여 다양한 서역 예술이 유입되었는데 그 흔적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그중 두드러진 것은 가무와 회화이다. 일반적으로 호악(胡樂)이라 불리는 서역음악은 한대에 전래되기 시작하여 지속적인 확대과정을 거쳐 수, 당대에 이르러 중국 악부(樂府)에 하나의 중요한 체계로 자리를 잡으면서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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