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이 불안하다
임금 인상이 불안하다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1.10.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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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얼마 전 공직에서 퇴직한 선배가 있다. 몸에 밴 삼십여 년 동안의 습관이 있어 아침이면 넥타이를 매고 구두에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서지만 막상 거리로 나서면 갈 곳은 없었다. 나와는 임의로운 사이니 아침부터 출판사에 찾아와 시간을 때웠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남의 사업장에 나와 기웃거리는 것도 눈치 보인다며 발길을 끊었다. 거리를 배회하고 공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소일거리를 찾아 헤맸으나 자기가 할 일이라곤 없다는 것이다.

같은 처지에 있던 퇴직 동료는 어찌어찌 연줄이 되어 아파트 경비로 직장을 얻었는데 그 친구를 선배는 무척 부러워했다. 보수의 고하를 떠나 할 일이 있다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선배는 삼십년의 공직 생활을 했으니 연금도 나올 테고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선배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아파트 경비로 있는 그의 친구가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최저 임금문제 때문이었다. 물론 임금을 올려주면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아파트 입장에서는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리면, 결국 관리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경비원을 줄여야 된다는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5년간 80%만 지급해도 된다는 유예조항을 유지시켜 달라고 하는데, 최저임금의 80%에 만족할 것이냐 100%를 다 받을 것이냐 하는 문제로 지금 아파트 경비원들이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아파트 측에서 경비원의 월급을 올려주는 문제를 논의했는데, 의외로 경비원들이 월급 인상에 반대했다고 한다. 월급이 높아지면 젊고 힘센 구직자들이 몰려와 자기들이 쫓겨날지 모르니 낮은 월급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감시 및 단속적 근로자, 즉 감시업무나 근로의 형태가 간헐적이거나 비지속적 근무자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해 시행하는 최저임금제가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독毒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제를 적용하자 아파트 단지마다 입주자들의 관리비 부담을 이유로 경비원을 줄이거나 휴게시간을 적용하며 임금을 동결하는 등 오히려 고용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과 수위, 전용 운전원, 보일러공 등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제가 적용되면서 오히려 아파트 경비원들이 직장에서 내몰리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비인력 인건비가 급증하자 입주자인 아파트 측에서는 관리비 부담을 우려, 경비원을 감축하거나 휴게시간제 도입 등을 통해 입주자들의 부담을 줄이는가 하면 경비원을 아예 없애고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한다니 경비원들의 임금 인상은커녕 일자리마저 잃게 되고 만다. 이렇게 아파트 경비원에게 최저임금제를 적용하는 대신 휴게시간을 도입,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법으로 총액 임금을 동결하고 경비인력을 줄이자는 고육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의 경비원 감축 현상은 아파트단지에서만 나타나고 있지만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보여 노년층의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입주민들도 노인보다 40-50대 중장년층을 선호하는 데다 최저임금 적용으로 월급이 올라 중장년층이 경비원 직종에 진출할 경우 노년층(60대 이상)의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 것이 아닌가.

정부에서 고용여건이 열악한 경비원 등을 위해 적용한 최저임금제가 ‘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선배와 낚시를 갔다. 솔직히 선배에게 가진 건 돈과 시간이다. 나와는 정반대인 셈인데 노는 것이라도 함께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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