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9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9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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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위에 새긴 명필... 생생한 감동으로 만난다
날씨가 흐리고 음울했다. 이틀 밤을 고도의 문화유적들과 함께 숨 쉬며 많은 생각을 했다.

장안성은 고대 성벽 가운데 유일하게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장안이 고대제국의 수도로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넓은 들판을 가진 원활한 교통입지와 용이한 급수문제에다 홍수피해도 받지 않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종을 치면 동서남북으로 이어지는 성문이 열렸고, 저녁에 종이 울이면 성문이 닫혀 외부의 출입을 금했던 실크로드의 관문역할을 한 완벽한 모습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안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길게 자리 잡은 깐수(甘肅)성을 따라 란저우(蘭州), 지아위관(嘉欲關), 둔황(敦煌)을 거쳐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를 거치는 천산남북로와 카스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과 로마를 잇는 실크로드의 대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라 매우 비장한 마음이 앞섰다. 앞으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시간들이 바다처럼 놓여 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어울렸던 국제도시 장안을 떠올리면서 시안 교외에 있는 반프어촌 유적지 박물관으로 향했다. 6000년 전에 존재했던 시안 반프어(半坡) 유적지는 신석기 시대의 촌락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원수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맞이한다. 1953년 우연히 발견된 반프어 유적지는 황하 유역의 전형적인 원시공동체 사회인 모계사회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발굴된 곳이다.

제 1전시관은 반프어인들이 사용하던 농기구와 돌 도구, 활, 동물유골, 토기, 공구재료, 종자 채집항아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 2전시관은 도기재료인 호로병과 잔, 항아리, 물독, 장용 항아리, 채색토기, 다양한 고기 화석, 새 종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 3전시관은 반프어인들이 살던 유적지가 보존되어 있는데 주거지역은 둥근 돔형지붕을 씌우고 마치 작은 체육관처럼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것을 복원한 집과 방 구조, 유적지 지층분석도, 구멍을 파고 만든 곡식저장 창고와 무덤에 대한 것을 전시하고 있으며, 장례할 때 무덤 안에 토기 같은 것을 함께 매장한 풍습을 볼 수 있다.

우측으로는 반프어 유적지를 복원한 씨족 마을을 지상에다 재현하여 놓았다. 마지막 전시실은 세계원시부족 사진자료전과 모계 씨족사회 사진들, 원시사회 생산방식, 성숭배, 생활양식등에 대한 사진전시 장소가 있다.

가랑비가 정원을 적시고 있다. 반프어 유적지를 중심으로 신석기 시대의 마을을 재현하여 놓고 옥수수 밭과 과일, 초막집 등을 꾸며놓아 과거의 생활상을 다시 한 번 감상해 볼 수 있었다.

낮 12시쯤 유적지를 나와 시안 베이린(碑林)으로 향했다. 베이린 박물관은 시안성의 남문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입장료 30元). 입구를 들어서면 좌우에 작은 동물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정원이 나타난다.

청 건륭시대(1755∼1759)에 세워진 거대한 비석이 2층 비각 안에 안치되어 있다. 정면으로 걸어가면 2층 누각 현판에 碑林이라 쓴 글씨가 나타난다. 화려하게 장식한 비문 위에 당 현종 이륭기가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비문 글씨가 있다.

비림에는 한(漢)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왕조의 묘지비석과 비문을 합쳐 3000여개가 수장되어 있어 중국 서예예술의 최대 보고(寶庫)가 되었다.

비림 1실의 개성석경(開成石經)이라는 병풍식 비석에는 총 65만 2500자에 이르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그 규모와 숫자에 놀라고 갖가지 아름답고 힘찬 필체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당대 명필들의 서체가 검은돌 위에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있는 표정과 소리를 내고 있다.

작은 글씨에서 몸집만한 큰 서체에 이르기까지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움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주경과 서경, 예기 등이 쓰여 진 비문을 지나 제 2실로 들어서면 거북이 등에 비석을 세우고 비석 상단은 아름다운 용과 부처상을 조각한 비문들과 거대한 석문 등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문의 모습이다.

다보탑 비를 비롯하여 불경화상비 등이 눈에 뜨인다. 제 3실에는 거북의 등 위나 돌에 새겨진 전서목록 편방자원비를 비롯하여 십팔체서(十八體書)등을 볼 수 있다. 제 4실에는 비석의 하단을 용으로 조각하고 그 위에 공자의 상을 커다랗게 돌에 새긴 비석이 눈에 뜨였다.

소림사 달마대사와 공자님의 전신초상을 새겨 넣고 일대기를 기록한 비문 앞에서는 절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비석에 사람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4실에서 좌측 통로로 제 5실을 들어가면 큰 글씨의 휘호가 보인다.

이곳에는 비석의 파괴를 막기 위해 테두리를 철재로 싸서 보호하고 있다. 제 6실은 적벽부(赤壁賦)와 화산기(華山記), 천자문 등이 있고 제 7실에는 비문을 벽면에 안치하고 유리로 덮개를 씌워 보호하고 있다.

비석에는 새의 발자국을 보고 최초로 한문을 만들었다는 창힐(蒼詰)의 묘비를 비롯하여 구양수, 왕희지, 안진경 등 중국역대 명필들의 서체는 물론 공자의 상(像)과 천자문, 금강경 등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필체들이 망라되어 있어 살아 있는 한문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학문을 하고자 했던 옛 선비들은 이곳에 와서 몇 달 몇 년을 깨우칠 때까지 비림의 돌들과 씨름하였다고 하니 이곳이야말로 살아있는 서체의 도서관이다.

베이린(碑林)은 북송(北宋) 철종(哲宗) 2년(1087년)부터 시작하여 약 9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漢)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수장하고 있는 비석, 묘지 비석이 3000여점 되고 1000여점은 전시를 위해 외부에 나가 있다.

중국 내 가장 많은 고대 비석을 보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비석림을 세우고 베이린(碑林)이라 불리고 있다. 시안 베이린은 중국 고대 서법(書法)의 진수이며 보고(寶庫)이다. 이런 문화들은 중국과 외국 문화교류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중국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현재는 서법애호가들이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분양의 비석을 음미하거나 감상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런 문화적인 유산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흐뭇할 뿐이다. 둘러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묵향이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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