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40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40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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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린을 관람한 후 택시를 타고 츠언스(慈恩寺)로 향했다. 츠언스 앞에는 큰 시민공원이 있고 지팡이를 잡고 있는 현장법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향나무가 늘어선 정원 좌우측에는 객당(客堂)이 있고, 거대한 따옌타(大雁塔)를 배경으로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밖에서 3배를 올렸다. 여의문(如意門)을 들어서면 법당 양쪽에 거북 등에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좌우에 서 있다. 법당 안에는 현장법사를 안치하여 놓고 벽면에는 현장스님의 연보가 적혀 있다.

자은사 경내에 있는 따옌타는 서역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당나라 현장법사(600∼664)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속명은 진의, 낙주(洛州) 구씨출신으로 11세에 형을 따라 낙양 정토사(淨土寺)에서 불경을 공부하다 13세에 승적을 얻어 화상(和尙)이 되고 현장이란 법명을 얻었다. 부처의 설법을 모은 경장(經藏)과 계율을 모은 율장(律藏), 연구 논석(論釋)을 모은 논장(論藏)을 삼장이라 하는데 삼장법사란 이 3장을 통달했다고 하여 일컬어지는 명칭이다.

벽돌로 쌓은 따옌타는 측전무후 때 크게 개수하였는데 원래 10층탑이었으나 전란으로 인해 상단 부분이 붕괴되어 현재는 64m의 7층만 남았다. 7층까지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28세인 현장은 황제의 명을 거역하고 몰래 서역행을 시작한지 18년 만에 서역 110개국을 순례하고 성공리에 귀환했다. 현장법사가 가져온 불상 9기와 불전 520협(夾) 657부를 진열하였는데 이 불전만 옮기는데 말 22필이 필요했다 한다. 태종의 명에 따라 자신의 도축구법 순례기인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을 646년 7월에 상재(上梓)하였다. 이 순례기는 직접 답사한 110개 나라와 전문한 28개 나라를 합쳐 총 138개 나라의 역사와 지리, 물산, 농업, 상업, 풍속, 문학, 예술, 언어, 문자, 화폐, 국왕, 종교, 전설 등 제반 사정에 관해 간결한 필치로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대 및 중세 초의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역사나 교류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문헌기록이 미흡한 인도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1차적인 사료로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현장은 5천축 80개국 중 75개국이나 역방하면서 사실적인 기록을 남겨놓음으로써 할거로 점철된 인도역사를 통일적으로 파악하는데 더 없이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영국의 인도역사 전공 학자 스미스(Vincent Smith)는 “인도 역사가 현장에게 진 빚은 아무리 높게 매겨도 결코 과분하지 않다”고 하였다. 인도 역사학자 알리는 법현과 현장. 마환의 저서가 없었더라면 인도 역사의 재현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귀국 후 현장은 장안의 홍복사에 머무르다 자은사(648년)로 옮겨 주석하면서 19년간 불교의 신종(新宗) 개창과 역경에 진력하였다. 현장은 중국 법상종의 시조다. 천축을 순방하며 유가론(瑜伽論) 학설을 종합하고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정립하여 법상종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워낙 교의가 번잡한 까닭에 법상종은 일시적으로 흥하였다가 곧 쇠퇴하고 말았다. 653년 일본 승 도소(道昭)는 현장에게서 법상종을 전수 받아 일본에 전하였다.

현장법사의 행적을 떠올리며 탑 뒤편으로 들어갔다. 현대식 건물로 말끔하게 단장한 현장 삼장원(三藏院)이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반야당(般若堂)이 있다. 반야당 안에는 탱화와 부조로 된 불화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삼장원 안에는 현장법사를 안치한 광명당(光明堂)이 있는데 현장의 구법순례를 불화나 조각으로 새겨놓았다. 이곳에는 항저우(抗州)의 링인스(靈隱寺)에서 본 노란색이나 주황색 법복이 아니라 우리나라 스님들처럼 회색빛 가사장삼을 입고 있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목숨을 걸고 구법 행렬에 헌신하였던 스님의 의지와 법력에 삼배를 올렸다. 겨우 하루 이틀정도 열차에서 자거나 버스를 타며 힘들어 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울 뿐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카스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터기의 이스탄불과 로마로 향하는 내 마음에 현장스님은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스님의 구법순례에 비하면 너무나 편안한 여정이 아니냐고 자신에게 위로해 보았다. 중국의 관광루트와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 문명의 교류와 역사의 흔적을 찾으며, 관광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를 답사해 보는 것이 여정의 목적이기에 중생제도의 일념으로 걸어서 18년을 길 위에서 보냈던 스님의 높은 뜻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앞서간 선배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동양불교사에 장장 19년간 경(經).논(論) 75부 1335권(총 1300여만 자)을 한역하는 미증유의 역경업적은 수 개황(開皇) 원년부터(581) 당 정원(貞元) 5년(789)까지 약 208년간 54명의 역경 자가 총 2713권의 불전을 역출하였는데 그중 약 절반이 현장 한사람이 수행한 것이다.

또한 순례기에 명시된 현장의 왕래노정은 갈(去路) 때는 오아시스로의 북로이고 돌아올 때는 남로이기에 한 사람이 남북로를 두루 답파하면서 남긴 기록은 중세 초 오아시스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대당서역기는 후에 명나라의 오승은(吳承恩)이 각색한 ‘서유기(西遊記)’의 대본이 되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대당서역기는 동서양 학계의 인정을 받아 1850년대부터 프랑스, 영어, 일어 등 여러 나라로 변역되었다. 현장은 664년 1월 1일 대보적경(大寶積經)을 시역(始譯)하다가 기력이 쇠진해 절필하고 섬서 의군(宜君) 옥화사(玉華寺)에서 입적하였다.

자은사 앞 현장법사의 커다란 동상과 우뚝 솟은 따옌타를 뒤로하고 4차선 도로가 뚫린 광장으로 나왔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샤오안타(小雁塔)가 있으나 시간이 없어 샨시역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천복사(薦福寺)는 684년 측전무후가 죽은 남편 고종황제의 백일기(百日忌) 행사를 기해 건립했다고 한다. 이곳에 건립된 사오안타(小雁塔)는 당나라 고승 의정(義淨)이 20여년간 30여개국을 방문하고, 400부의 경전을 가지고 귀국하여 천복사에서 번역한 것이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이다. 이 책은 당시 중국과 인도의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천복사는 인도와 서역에 구법순례를 했던 신라인 혜초가 주석했던 곳으로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마지막 코스로 시안의 문화유물들을 둘러보고 란저우( 蘭州)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 곧바로 택시를 타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입구엔 단체로 관람하는 학생들로 붐볐다(입장료 35元).

주은래의 지시로 건립한 시안역사박물관은 부지 7만m2, 건평 55663m2로 중국 지방박물관 중 최대의 규묘이다. ‘91년 6월에 개관한 고색창연한 당나라 건축양식의 건물로 소장품 37만 500건 중 국가 1급품 762점, 국보 18점을 보유하고 있다. 전시실은 전통문화와 현대과학기술이 접목된 예술의 전당이다.

제 1전시실에는 역사 이전 시대의 중국고대와 신석기 문화, 앙소문화의 씨족생활상등과 주(周)나라의 청동제품, 서주(西周)와 진(秦)왕조 등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서주시대의 다리가 셋인 솥과 동탁(銅鐸), 청동악기 등이 세련되고 눈에 띄는 유품들이다. 제 2전시실은 한의 장안성과 위진남북조 시대의 유품, 제 3전시실은 수당전시실로 당 3채의 채색도기가 인상적이었다.

당대의 대표적인 도자기 당삼채는 기형이나 내용, 기법에서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다. 납작한 오지인 삼채편호(三彩扁壺)는 기형에서 이란형을 모방한 것이고, 인물삼채는 서역인의 형상이 유난히 많다. 마부나 낙타몰이꾼 용(俑) 등 호인삼채(胡人三彩)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눈이 깊이 들어가고 코가 높은 서역인들이다. 복식 또한 서역인 복장에 모자와 혁대를 차고 있어 당대의 아랍문화의 영향과 교류의 폭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송, 원, 명, 청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되어 지나간 시안의 발자취와 역사·연대기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배치하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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