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75>
궁보무사 <7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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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부용아씨의 복수
과연 율량이 장담했던 대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한벌성을 빠져나갔던 강치 일행으로부터 고대하던 소식이 날아왔다. 지난번 바둑 내기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한벌성 이십 여리 떨어진 어느 숲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율량에게 그곳으로 꼭 좀 와달라는 것이었다.

율량은 무장을 한 심복 부하들과 봉술에 능한 무사 수곡 등을 데리고 그곳을 찾아갔다. 만나기로 한 그 약속 장소에는 대여섯 명쯤 되는 사내들이 모두 장사꾼 행색을 한 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수염을 말끔히 깎고 그 위에 검댕이 칠을 하였지만 율량은 그가 강치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형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강치는 율량을 만나자마자 땅바닥 위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오! 강치 아우, 반갑네.”

율량은 강치를 보자마자 크게 반가운듯 덥썩 안았다.

“형님! 제가 그때 약속했던 그 명기를 여기 데리고 왔습니다. 형님께선 오늘 밤 몸을 맘껏 푸십시오. 아마도 형님께서는 온몸의 살이 살살 녹아내리고 뼈마디마디가 흐믈거릴 정도로 아주아주 기가 막힌 맛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강치는 이렇게 말하며 가마를 타고 그들과 함께 온 듯한 어느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깡마른 얼굴에 촌티가 줄줄 흐르는 보통 키의 30대 초반 여인은 자기 딴엔 수줍은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살며시 돌려 외면했다.

율량은 그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순간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이제까지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명기와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한마디로 지극히 별볼일이 없는 용모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눈치 챈 강치는 빙긋 웃음을 지으며 율량에게 말해다.

“하하하……. 형님! 걱정 마십시오. 솔직히 말해 여자 인물치고는 상당히 빠지고 처지는 편이긴 합니다. 하지만, 돼지를 얼굴 보고 잡습니까? 실제로 먹어봐야만 제대로 된 참 맛을 느낄 수가 있듯이 일단 저 여인을 데리고 놀아보십시오. 형님께선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보게 강치 아우! 실은 말일세. 오늘 밤이 돌아가신 내 아버님 제삿날이라네. 그러니 내가 어찌 감히 여색(女色)을 즐길 수 있겠는가.”

율량이 점잖게 말했다.

“그, 그럼. 내일은….”

“역시 마찬가지라네. 우리 한벌성에서는 자기 부모님 제사 전후로 약 보름 동안은 모든 것을 삼가도록 되어 있다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직접 맛을 볼 수는 없는 일이고. 자, 이러는 건 어떨까? 지금 나와 함께 온 자에게 나를 대신하여 그걸 맛보게 한다면?”

“그 그야, 못 할 것도 없지만요…….”

강치는 율량의 이런 엉뚱한 제안에 떨떠름하고 거북살스러운 듯 오만상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 내저었다.

“자, 아무튼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을 터이니 이걸 받아두게나.”

율량은 이렇게 말하며 부용아씨에게 또 받았던 황금덩어리 한 개를 강치에게 슬며시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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