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70>
궁보무사 <7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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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부용아씨의 복수
“어허! 그래. 아우, 그럼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나는 아우와 더불어 이렇게 바둑을 두며 재미있게 노는 것이 좋기는 하다만, 아우의 사정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율량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몹시 아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지만, 저는 지금 죄를 지은 죄수의 신분인지라 자유롭게 이 한벌성을 빠져나갈 수가 없는 몸이옵니다.”

강치가 우거지상을 지으며 이렇게 다시 말했다.

“어, 그래. 그럼 내가 먼저 자네의 죄수 신분을 벗겨줘야만 하겠구먼.”

율량은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아이고, 형님! 그러면 오죽이나 좋습니까. 제발, 그것 좀 부탁하옵니다.”

강치가 갑자기 크게 반색을 하며 얼굴 위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데, 자네 죄목이 무엇인가? 우리 한벌성에서는 사람을 죽이거나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자가 아니라면 그가 피해를 입힌 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고 용서를 받는다면 간혹 죄가 사하여지는 수도 있다네.”

율량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거야 저도 잘 알고 있읍죠. 하지만 이곳 한벌성사람들은 제가 타향에서 온 사람이라 그러는지 도무지 저를 용서치 아니하려고 드니…….”

강치는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답답해지는지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마구 쥐어뜯어 보이며 괴로운듯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으음…….”

율량은 뭔가 생각을 해보는 척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다가 천천히 강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러면 어떻겠는가? 이 세상에 금은보옥(金銀寶玉)으로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인즉, 자네가 피해를 입혔다는 처녀와 그 가족뿐만 아니라 자네에게 비우호적인 사람들을 모두 골라 찾아내어 후하게 모두 대접을 해준다면….”

“휴-우!”

강치는 웬일인지 율량의 말을 듣고는 갑자기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뱉어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저 혼자 뇌까리듯이 이렇게 큰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런 생각이야 제가 왜 하지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이곳 한벌성에 들어와서 돈이 궁한 집안의 처녀를 돈 주고 사가지고 나가려할 즈음, 갑자기 한벌성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어와 제가 팔결성에서 온 첩자 같은 놈이라며 저를 마구 때리는 등 뭇매를 가했지요. 그리고 저는 항의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감옥으로 끌려 들어온 것입니다. 물론 이 통에 제가 갖고 있던 재물은 어느 귀신이 가져갔는지도 모르게 몽땅 다 사라져 버렸고요. 원래 저와 함께 들어온 제 일행은 이곳 한벌성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몸들인지라 이 기가 막힌 속사정을 제대로 하소연 할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끙끙거려가며 가슴앓이를 해오고 있던 중 매우 다행스럽게 제가 대신님을 만나 뵙게 되어 지금 이렇게 터놓고 제 속사정을 시원하게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아! 이렇게 제 억울함을 속시원하게 말씀드리고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쁜해지고 또 홀가분해지는 것만 같사옵니다.”

강치는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그동안에 쌓이고 쌓였던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오르는지 바둑판 위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소리 내어 한참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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