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52>
궁보무사 <52>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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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벌성주의 고민
마침내 한벌성에서 연락을 받고 성주의 딸 부용아씨를 데려가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배를 타고 미호 강물을 건너왔다.

그런데, 부용아씨가 배 위에 막 올라가려는 순간 갑자기 날이 시퍼런 단도를 꺼내들더니 자기 목에 바짝 들이대며 이렇게 큰소리로 외쳤다.

“기왕에 떠나는 마당이니 나는 내 아들을 꼭 한번 안아보고 가련다. 어서 당장 달려가서 내 아들을 데리고 와라.”

이를 보고 깜짝 놀란 한벌성 사람들과 팔결성 사람들이 제발 그러지 마시라며 통사정을 하였지만 칼을 든 부용아씨는 한마디로 막무가내였다.

자기가 모진 아픔과 온갖 고통을 참아가며 힘들게 낳아놓고 젖을 먹여가며 키우던 아들을 이 자리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안아보게 해주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이 칼로 자기 목을 따가지고 강물로 퐁당 뛰어들어가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부용아씨의 이런 무시무시한 으름장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바짝 졸아버렸다. 평소 그녀의 불같은 성질로 보아 충분히 그렇게 할 만한 여자로 보였다.

사정이 너무 급박한지라 근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팔결 병사들이 성주 오근장에게 급히 달려가서 사실대로 아뢰었다.

팔결성주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엔 몹시 화가 나긴 했지만, 모자(母子)간의 끈끈한 정(情)을 좀 더 찐하게 남겨두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하고는 부하들을 시켜 돌이 갓지난 자기 어린 아들을 그 어미(부용아씨)가 있는 곳으로 급히 보내주었다.

부용아씨는 비단요에 싸여진 자기 아들을 받아들자 처음엔 울먹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두 뺨을 불이 나도록 연신 부벼댔다. 그러나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부용아씨는 안고 있던 자기 젖먹이 아들을 냅다 내동댕이쳐대며 소릴 버럭 질렀다.

“흥! 내가 지금 쫓겨가는 판인데 왜 오근장의 씨를 여기에 남겨놓느냐.”

바닥에 떨어진 갓난아기는 몸부림을 쳐대며 마구 울어댔고, 부용아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냥 배를 타고 한벌성을 향해 떠나가 버렸다.

깜짝 놀란 팔결 병사들은 바닥에 떨어진 성주의 아들을 얼른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급히 오근장 성주에게로 아이를 가져가 사실대로 아뢰었다.

“뭐, 뭐라고? 아니 그렇게 독한 계집이 다 있나.”

팔결성주는 또다시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다행히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의 아들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경기(驚氣)가 들었는지 깜짝깜짝 자주 놀라곤 하였다.

팔결성주는 급히 의원을 불러 아기를 진맥하게 하고는 몸에 좋다는 약재를 골고루 구해다가 먹이도록 하였다.

한벌성으로 돌아간 부용아씨는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 따위는 단 한 가지도 내비치지 않은 채 오로지 팔결성주 오근장의 못된 행동이라든가 변태적이고도 상식을 완전히 넘어선 성욕구, 그리고 자기가 단지 여자라는 죄목 한가지로 인하여 그곳에서 설움을 받았던 일 등등 따위를 아예 입에 발리듯이 떠벌여가며 한벌 성내를 돌아다녔다.

한벌성 사람들은 부용아씨의 말만을 듣고 몹시 분개했다

‘어머머! 원 세상에…….’

‘그렇게 나쁜 놈이 다있나.’

‘우리 부용아씨를 함부로 무시하고 욕보이는 건 우리 한벌성 사람들을 무시하고 욕보이는 거나 마찬가지야!’

‘천둥 번개에다가 벼락을 맞아 죽을 놈, 착하고 순하게 자란 처녀를 아내로 삼았으면 크게 고마워 할 것이지, 처녀의 몸을 완전히 망쳐놓은 데다가 그토록 심하게 괄시를 했다니…….’

‘싸가지 없는 팔결성주 놈! 그리고 팔결성 놈들! 앞으로 네 놈들이 우리 한벌성 근처에 얼쩡거리기만 해봐라! 내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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