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51>
궁보무사 <51>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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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벌성주의 고민
“좋다. 내 이제까지 제법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런 심하고 역겨운 수모는 처음으로 당해보는 터. 도저히 그냥 두고 참을 수 없다.”

팔결성주 오근장은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숨을 할딱거려가며 이렇게 말하자 바로 옆에 있던 신하 창리가 깜짝 놀라 외쳤다.

“성주님! 아니 되옵니다. 절대로 그건 아니 되옵니다. 한벌성의 인구는 우리 팔결성의 인구보다 무려 세배 이상 더 많습니다. 게다가 한벌성은 사방팔방에서 넘보는 적들에 대항하고자 수천 명의 장졸(將卒)들이 사시사철 쉬지 않고 계속 무예 수련을 하고 있기에 천하 강병(强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주님! 다소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이번 일을 그냥 감정나는 대로 처리해서는 결코 아니 되옵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행을 고려해 보셔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대체 이를 어찌하란 말이요? 듣자하니 이번 일을 핑계로 하여 요즘 한벌성의 가난한 사람들은 중요한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서쪽 지방과 남쪽 지방으로 쌀을 팔러가는 우리 팔결성 사람들을 골라 급습하여 재물을 함부로 빼앗고 심지어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한다는데…….”

팔결성주 오근장이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신하 창리에게 다시 물었다.

“어쨌거나 이번 일을 좋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한벌성주의 따님 부용아씨를 우리가 무조건 달래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예 입을 벌리려고도 하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저러다 혹시 굶어죽기라도 한다면 온갖 죄와 허물을 내가 몽땅 다 뒤집어쓰게 되는 꼴이 아니겠는가.”

오근장이 몹시 초조하고 답답한 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몰아 내쉬며 말했다.

“성주님! 퍽 외람된 생각이긴 하오나 차라리 부용아씨를 자기 부모님이 계시는 한벌성 안으로 보내드리는 것이 어떠하온지요.”

신하 창리가 다시 말했다.

“뭐, 뭐라고.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다. 아직 오해가 풀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내를 한벌성으로 돌려보냈다가 나중에 내가 무슨 끔찍한 봉변을 당하려고 하는가!”

오근장이 기겁을 하며 말했다.

“성주님! 우리가 부용아씨만 한벌성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이지 그 아기씨까지 함께 보내자는 건 아니옵니다. 이 세상에 모성애(母性愛)만큼 지독하고 또 악착스러운 것은 없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러니까 제아무리 성질이 사납고 독한 여자일지라도 자기가 낳은 자식과 억지로 떨어져서 지내다 보면 자연히 보고 싶어서 안달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식이 보고 싶어서라도 머리를 숙이고 팔결성으로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 아니겠습니까?”

“으음음……. 듣고 보니 그거 매우 좋은 의견 같구먼. 그럼 당장 그렇게 하게나. 사실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건대, 저렇게 독하고 되바라진 색녀를 내 마누라랍시고 성질 죽여가며 데리고 산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네.”

결국 팔결성주는 신하 창리의 의견에 따라 자기 아내(부용아씨)를 친정집(한벌성)에 보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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