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50>
궁보무사 <5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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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벌성주의 고민
한편, 팔결성주의 명령을 받고 술과 떡을 한수레 가득 실어가지고 한벌성안으로 들어간 장수 두릉은 성주를 뵙자마자 주위 사람들을 잠시 물러가게 부탁하였다.

그리고는 적당히 분위기를 잡아가지고 한벌성주 앞에 두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아 자기 딴엔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모든 걸 죄다 까놓고 솔직하게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부용아씨가 팔결성주 오근장에게 시집을 와서 아기를 낳아 기르면서도 남편 몰래 사내들을 불러들여 재미를 보곤 했던 일들, 그리고 심지어 젊은 노예에게 자기 뭐를 함부로 들이 내밀어주다가 이를 몰래 지켜보고 있던 남편 오근장에게 직통으로 들켜버린 일 등등…….

그가 오근장 성주로부터 들었던 모든 사실들을 하나도 숨기거나 가감(加減)함이 없이 고지식하게 그대로 모두 아뢰었다.

“뭐? 뭐야? 아니, 그, 그럼 내 딸 아이가 개처럼 굴었단 말이야. 천하디 천한 놈에게 암캐처럼 맨 궁둥이를 바짝 들이대가며 뭘 좀 해달라며 통사정을 했다는 거야?”

한벌 성주는 얼굴을 시뻘겋게 달군 채 두 눈을 부릅뜨고 두릉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장수 두릉은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천지신명(天地神明)을 앞에 두고 말씀드리건대 이것은 모두다 사실이옵니다. 하지만 우리 팔결성주 오근장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로하고…….”

“닥쳐라, 이놈아! 가만히 보자보자하니까 내 앞에서 별별 소리를 다 지껄이는구나. 그래, 우리 딸아이가 암캐같이 굴었다고 한다면 그 아비가 되는 나는 개(犬)란 말이냐?”

“아, 아니……. 제, 말뜻은 그, 그런 게 아니오라…….”

두릉은 그제야 자신이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 일이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 채고는 크게 당황하며 급히 변명을 하고자하였다.

그러나 한벌성주는 이미 화가 날대로 나버린 상태였다.

“필요 없다 이놈아! 방정맞은 네 놈의 주둥아리를 박박 찢어 내버리고 더럽게 날름거리는 혀를 당장 뽑아내어 회를 쳐주고 싶다마는 그래도 나를 만나러온 사신이라고 하니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러나 나와 우리 딸아이를 감히 개 취급 해버린 이상 그냥 곱게 돌아가지는 못할 줄로 알아라. 여봐라! 저 놈을 당장 개 취급 해가지고 내쫓도록 하라.”

서슬이 퍼런 한벌 성주의 명령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자기 딴에는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밝히고 난 뒤 한벌성주의 양해를 받아오겠다며 큰소리치고 한벌성 안으로 들어왔던 팔결성 장수 두릉은 그야말로 오뉴월 개 패듯이 몽둥이로 때리는 한벌성 병사들에게 온몸을 흠씬 두들겨 맞고는 옷이 몽땅 다 벗겨졌다.

그리고는 목에 밧줄이 칭칭 동여매진 채로 개처럼 질질 끌려다니며 온갖 수모를 당하다가 두릉은 간신히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팔결성에 돌아갔다.

충성스러운 자기 부하 두릉이 이런 모질고 험한 꼴을 당한 채 돌아오자 팔결성주 오근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닌 사위인 내가 사죄를 하기 위해 선물까지 주어서 보낸 자를 이런 개꼴로 만들어가지고 돌려보내다니. 그까짓 놈이 내 장인이야, 내 이놈을 당장 그냥!”

성주 오근장이 몹시 분한 듯 숨소리를 씨근덕거려가며 팔팔 뛰어대자, 거의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장수 두릉이 눈물을 질질 흘리고 위아래 이빨을 부드득 갈아대며 말했다.

“그 애비에 그 딸이라고……. 제가 사실을 조목조목 따져가지고 누누이 설명을 드려도 그 한벌성주놈은 무조건 화만 냅디다. 성주님! 저에게 기마병 오백기와 군사 이천 명만 내어주십시오. 제가 한벌성을 곧바로 급습하여 제대로 본때를 한번 보여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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