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49>
궁보무사 <4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1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한벌성주의 고민
오근장은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자기가 가장 신임하고 있는 부하 장수 두릉과 신하 창리를 급히 불렀다. 오근장은 이 두 사람을 한벌성 안으로 보내어 지금 잔뜩 독이 올라 있을 한벌성주의 노여움을 달래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의견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두릉 장수는 무엇보다도 정직한 것이 최우선이요, 결국엔 모든 것이 사실대로 드러나고 말 것이니 부용아씨가 이곳 팔결성으로 시집을 와 이제까지 저질렀던 모든 비리들을 아버지인 한벌성주 앞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까발려서 밝히고 난 다음 널리 양해를 구해보자는 의견이었고, 신하 창리는 다소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한 감이 있긴 하지만, 한벌성주 앞에 나아가 금번 일은 부부들 사이에 가끔씩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오니 널리 양해해 주시고 만약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신다면 곧바로 시정을 하겠노라는 식으로 무조건 용서를 비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오근장은 하늘땅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이 두 사람의 의견을 놓고 한참 생각해보다가 결국 두릉 장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자기 아내(부용아씨)가 저지른 짓들이 어디까지나 대명천지(大明天地)에 벌어진 일들이었고 또 확연하게 드러난 이상 솔직히 털어서 밝혀놓고 난 다음에 용서를 빌던가 하는 것이 이치로 따져보거나 순리적으로 보거나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근장은 미호 강물을 끼고 넓게 펼쳐져 있는 기름진 오창평야에서 생산되는 맛있는 쌀로 빚은 술과 떡을 한 수레 가득 실어가지고 한벌성으로 들어가서 성주를 만나 뵙도록 두릉 장수에게 명령을 했고, 그때까지 벽장 속에 갇혀 있던 아내(부용아씨)를 나오게 하여 깨끗이 목욕시킨 뒤 맛난 음식과 값비싼 비단 옷을 주는 등등 그녀의 환심을 사보고자 최대한 노력해 보았다.

그러나 부용아씨는 늙은 남편 오근장의 이런 행동이 너무나 고깝게 여겨졌던지 인상만 북북 그어댈 뿐 조가비처럼 꽉 다문 입을 벌리지 않았다. 아니,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녀는 이번 기회에 아예 굶어죽어버릴 작정을 하였는지 아예 아무것도 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성주 오근장은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광대들을 들여보내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그녀 앞에서 펼치게 하는 등등 꼭 막혀진 그녀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고자 무진 애를 써봤으나 완전히 허사!

야무지게 꽉 다물어져 있는 그녀의 입은 도통 벌어질 줄 몰랐다.

‘하! 요런 독종 같은 계집. 자기 아랫 입을 헤프게 벌리듯이 윗입도 헤프게 벌려주면 좀 어때서 그래.’

팔결성주 오근장은 부용아씨의 무서운 성깔에 다시금 놀라 가슴을 몰래 쓸어내리며 한숨을 길게 몰아내 쉬었다.

그리고는 어쩌면 멀지 않은 장래에 자신에게 불어 닥칠는지도 모를 무서운 불운(不運)을 미리 감지(感知)라도 하는 듯 오근장은 그 커다란 몸집을 부르르 떨어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