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43>
궁보무사 <4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1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한벌성주의 고민
“하지만, 아무리 내 딸이라고 해도 그렇지, 저렇게 수도 없이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은 걸레 같은 여식을 어찌 버젓하게 처녀인 것처럼 꾸며가지고 시집을 보낼 수 있겠소?”

그때 한벌성주는 고뇌에 가득찬 목소리로 좌중을 둘러보며 이렇게 물었다.

“아닙니다. 세상에 자기 색시가 될 여자가 처녀인지 아닌지를 미리 알아 보고나서 장가를 드는 총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첫날밤 처녀막이 어떠니 저떠니해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건 순전히 허구일 따름입니다. 뭘 잘 모르는 숫총각의 경우엔 애 서넛을 낳아놓은 여자와 첫날밤을 치러보고도 그녀가 진짜 처녀인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분하다고 합니다.”

“맨처음 관계한 여자의 몸에서 피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를 따져가지고 처녀 비처녀 유무를 알아보려고 하는 멍청이들도 간혹 있긴 있다던데, 그건 젊은 여자들이 매달 피를 쏟는 달거리 날짜에 교묘히 맞춰가지고 시집을 보낸다면 별다른 지장이나 아무 탈이 없을 걸로 생각되옵니다.”

대신들이 이렇게 제각각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 정도 얄팍한 술수로는 그 방면에 이미 달통해 있는 사내에겐 금방 들키고 말 터인데, 그러면 도대체 무슨 망신이겠소?”

성주가 몹시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다시 물어오자 그때 율량 대신이 이런 꾀를 내었다.

“성주님! 아주 좋은 수가 있습니다. 부용아씨께서는 마침 체격이 아담하신 편이오니 가급적이면 체격이 아주 커다란 사내를 골라가지고 그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이옵니다.”

“체격이 아주 커다란 사내라.”

“물론 체격은 크면서도 실제로 남자 그것은 지극히 별 볼일 없는 경우도 간혹 있긴 있습니다만, 그러나 체격이 아주 큰 남자라면 자연스럽게 남자의 그것도 웬만큼 클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러니까 그런 남자는 체격이 작은 부용아씨와 첫 관계를 맺을 때 처녀인지 아닌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라는 말씀이옵니다.”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딸아이가 커다란 남자를 받아들이느라고 매일 밤마다 잠자리에서 퍽 고통스러워할 터인데.”

성주는 이렇게 말하며 몹시 걱정이 되면서도 몹시 언짢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기 딸이 숱한 남자들과 질퍽하게 놀아났었기에 그런 따위의 걱정일랑 아예 신경 쓸 필요조차 없음에도 성주는 부정(父情) 때문에 자기 딸의 안위부터 이렇게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성주님! 그렇다면 나이가 조금 지긋하면서도 몸집이 커다란 홀아비한테 아씨를 시집보내는 것이 괜찮을 듯 싶사옵니다. 그런 남자라면 잠자리에서 여자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알 것이고, 또 설사 아씨의 과거 행실이 조금 들춰지더라도 자기 처지와 입장을 생각해서 널리 양해해 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다른 대신이 나서서 이런 의견을 내었다.

“으음……. 나이가 지긋하면서도 몸집이 커다란 홀아비라……. 하지만 자기 아비가 성주인데 우리 가문 수준과는 어느 정도 비슷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성주가 또다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갑자기 율량대신이 기쁨에 가득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 성주님! 가문도 좋고 체격도 적당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적당한 사람? 그게 누구인가?”

“팔결성주 오근장이옵니다.”

한벌성주는 마침내 결심한 듯 큰소리로 외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