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발자취를 찾아서 < 25 >
기독교 발자취를 찾아서 < 25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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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교회
우수리로 시작된 작은 열매 복음의 큰 기적 이루다

대전과 충북 청원군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청(鴉靑) 빛. 대청호반은 언제봐도 푸근하고 넉넉하다.

자연경관이 빼어나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대청호의 시원한 물줄기를 마주하고 대한예수교 장로회 문의교회(담임목사 민강기)가 있다.

1921년 4월 15일 창립한 문의면 미천리에 위치한 문의교회 설립에 밀알이 된 사람은 당시 청주읍교회 윤광석 집사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학생들에게 복음 전파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1920년대 청남학교 사찰로 학교를 위해 봉사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과 전도사업으로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주일이면 서상필 조사. 이병분 조사. 이호재 영수와 함께 번갈아 문의 교회까지 나가 복음선교와 농촌의 미신타파에 앞장섰다. 그 결과 1921년 문의면 미천리 김낙연씨 집에서 윤광석 집사의 인도로 창립 예배를 가짐으로써 문의교회가 세워졌다.

1922년 이세영 모친이 미천리로 이사오면서 3원 헌금한 것을 시작으로 청주제일교회 남전도회에서도 3원을 헌금해 6원으로 예배처소를 마련했다.

충북 복음화. 교육. 청년 운동 그리고 농촌 부흥에 헌신한 믿음의 용장 한부선 선교사가 1923년 청주에서 당회장으로 주일예배를 인도했다.

   
1936년 문의교회를 시무하던 박영재 전도사는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그것에 반대해 당시 전도사직을 사임하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 괴산군 수안보 인근 중석 광산의 광부로 들어가 신분을 숨기고 생활했다.

그는 이때 얻은 진폐증으로 한 때 사경을 넘나드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목회자의 길을 걷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신앙생활은 접을 수 없다는 결단으로 1940년 다시 전도사의 길로 들어서면서 충북에서 교회를 가장 많이 개척한 목사로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이후 김칠경 집사가 초대 장로로 장립되었고. 장하원 전도사가 교회를 시무했다.

1944년 곽경환 목사가 시무하던 중 일제탄압으로 교역자 없이 김동현 집사가 예배를 인도하던 중 광복을 맞아 기쁨과 감사로 교역자를 모실 수 있게 됐다.

1948년 김병기 집사가 2대 장로로 장립되었고. 1949년에는 지금은 대청댐 물속에 잠긴 마을에 22평 신축 예배당을 건축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교회 장부도 소실됐다.

일제탄압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기를 맞은 사람들에게 교회는 물리적 보호와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는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은 한국교회의 기존의 선교적 경계를 무너뜨렸으며. 일선에서 물러났던 교역자들과 지도자들의 복귀와 아울러 새로운 지도자들의 출현으로 지도력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전쟁을 분기점으로 농촌마을 문의교회도 급격한 교세 확장을 이룬다. 1951년 최준문 장로와 윤재석 장로가 시무하고. 1955년 황숙성 집사가 3대 장로로 장립 되면서 전 교인의 노력과 봉사로 1969년 50평 새 예배당을 건축했다.

하지만. 1978년 대청댐 건설로 문의면 문살리가 수몰되면서 문의교회 초창기 역사는 막을 내렸다.

경건에 이르기에 힘쓰는 교회

1978년 현 교회터로 자리를 옮긴 문의교회는 각종 공해와 소음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탁 트인 교회마당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치유의 현장답게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1982년 현 교회터에 대지 326평. 연건평 164평. 사택 30평. 창고 10평을 건축하고. 창립 60주년 기념예배 및 헌당식을 가진 문의교회는 80여년 역사와 더불어 문의면 문살리 사람들의 신앙심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문의교회는 문살리에서 이곳 미천리로 교회를 옮기면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로인해 문의교회를 시무하던 박윤기 목사가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박 목사는 교회를 떠나면서 수몰지역 작은 교회의 물질적 절박함을 교단지에 기고했다.

이때 서울신광교회와 남선교회가 중심이 되어 교회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에 문의교회는 지난 2001년 교회창립 80주념 기념예배 및 김혜자 권사 은퇴식을 맞아 신광교회 교인들을 초대해 교류의 장을 가졌다.

'경건에 이르기에 힘쓰는 교회'(딤전 48)를 표어로 내건 문의교회는 영혼구원과 화목을 위해 기도하며 전 교인이 사랑으로 하나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실천하고 있다.

민 목사는 지난 1999년 2월 부임 후 '빚진 마음을 베풀고 섬기자'란 주제아래 선교회를 조직했다. 전 교인의 작은 정성으로 문의 초·중학교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독거노인. 선교사. 농촌 미자립교회 및 일신학원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교회 여선교회를 중심으로 한 독거노인. 소년 소녀가정 반찬지원 봉사활동으로 청원군 내 모범적인교회로 꼽혔다.

또한 민 목사가 꿈꾸고 있는 새로운 계획은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센터. 열악한 교육환경을 위한 문화교육의 장.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사랑. 교회중심. 성도교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문의교회 민 목사는 "예배. 선교. 교육. 교제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사역이지만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과 섬김을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초대교회 같이 부흥. 봉사하는 교회'를 표방하고 있는 문의교회는 전 교인이 마음을 같이해 모이기에 힘쓰며.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과 사랑실천에도 앞장서는 등 21세기 진정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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